김경재 (1901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Naeos (토론 | 기여)
새 문서: '''김경재'''(金璟載,1901~?)는 일제강점기 상하이계림 구락부 상무이사이자 만선일보 촉탁 받은 사람이다. 1901년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났다....
태그: 새 문서에 분류 없음
 
Singgre (토론 | 기여)
12번째 줄:
== 중일 전쟁 ==
1940년 지나파견군 총사령부참모부 제 2과 소속 상하이기관 촉탁에 임명되어 상하이에 남아 있던 민족주의단체 흥사단의 원동지부를 파괴하는 공작을 펼쳤다. 그 결과 같은 해 7월 흥사단 원동지부는 위원장 장덕로(張德櫓)를 비롯한 임원 명의로 흥사단 원동지부 해소성명서를 발표했고, 아울러 원동지부가 소유하고 있던 난징에 있는 1800평의 토지와 현금 300원을 지나총군사령부 상하이기관에 헌납하였다.
 
1940년 7월 일제의 지시로 중국 국민당 관할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회유하고 귀순시키기 위한 선전방송을 기획하였으며, 8월부터 조선어 선전방송을 실시하였다. 같은해 12월 일제의 괴뢰정권인 왕징웨이정권을 옹호하는 중국어 신문이 상하이시보를 주도적으로 창간하고 부사장을 맡았으며, 1941년 4월 사장에 취임했다. 상하이시보는 1942년 4월 자진 폐간할 때까지 “반공화평과 신중화민국건설의 길로 중국 민중을 지도하기에 만난을 무릅쓰고 노력했다”고 부일협력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한편 1941년 9월부터 상하이계림구락부기관지 광화가 속간되면서 광화사 사장을 맡았다. 상하이계림구락부는 조선인의 친목, 황민의식과 내선일체 고취, 전쟁협력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친일단체로서 1943년경 상하이계림회로 명칭을 바꾸었고, 일제 패망 때까지 상하이 조선인 사회를 황민화운동과 일제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전시총력체제로 내몰았다. 광화 1941년 12월호에 실린 “반도동포에게 격(檄)함”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다. “일어나라! 가장 정예한 황국동포여! 나가라! 친애하는 우리 반도동포여!/내선일체! 세계 인류를 위하여 광영 있는 자손을 위하여! / 우리들은 일화견적, 소극적 태도를 청산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아가라! / 황국의 영원한 약진발전과 대동아건설은 결정적인 일전을 남겨두고있다. / 우리들은 오직 직역봉공과 신도실천에 결사적으로 철저히 할것이다.”<ref>친일인명사전편찬의원회, 2014, “친일인명사전1” 236~238쪽, 민족문제연구소</ref>
 
일어나라! 가장 정예한 황국동포여! 나가라! 친애하는 우리 반도동포여!
내선일체! 세계 인류를 위하여 광영 있는 자손을 위하여!
우리들은 일화견적, 소극적 태도를 청산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아가라!
황국의 영원한 약진발전과 대동아건설은 결정적인 일전을 남겨두고있다.
우리들은 오직 직역봉공과 신도실천에 결사적으로 철저히 할것이다.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