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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eptember byzantinisch.jpg|섬네일|왼쪽|250 px|[[9월]]의 우의적 묘사. 11세기경]]
 
로마 제국의 경제는 수백년간 지중해와 유럽에서 단계가 가장 발전되어 앞서 있었다. 특히 유럽은 중세 후기까지 로마 제국의 경제력을 따라가지 못했고 로마 제국에서는 서유럽과 달리 화폐 경제 제도가 발달하였다. 제국 행정부에서 발행한 금화 [[노미스마]]는 [[11세기]] 전반까지 높은 순도를 유지해 후세에 ‘중세의 달러’라고 불릴 정도로 여러 나라에서 화폐로 유통되었다. 특히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는 업종마다 길드를 이용한 국가에 의거한 보호와 통제가 두루 미쳤으므로, 국영 공장에서 독점으로 제조된 견직물이나 귀금속 공예품, 타국과 한 무역이 제국에 많은 부를 가져와,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세계의 부의 3분의 2가 모이는 곳’이라고 칭해질 만큼 크게 번영하였다. 오랫동안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 거의 모든 지역을 포괄하는 무역망의 중심지였으며, [[비단길]]의 서측 관문이기도 하였다. 어떤 학자들은 7세기에 아랍인이 쳐들어오기까지 제국은 세계에서 최강한 경제력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나{{출처|날짜=2013-06-18}} 아랍인의 정복으로 부는 역전되어 로마 제국은 한동안 침체기를 맞았다. 콘스탄티노스 5세의 개혁(765년경)으로 제국은 부흥해 1204년까지 발전하였다. 10세기에서 12세기 말까지 로마 제국은 화려를 과시했고 여행자들은 수도의 부에 깊이 인상받았으나 경제상 재앙이었던 [[제4차 십자군]]으로 일체가 달라졌다.<ref name="M532">Magdalino ''in Laiou'' (2002), [http://www.doaks.org/EconHist/EHB20.pdf 532] {{웨이백|url=http://www.doaks.org/EconHist/EHB20.pdf |date=20080625192523 }} {{웨이백|url=http://www.doaks.org/EconHist/EHB20.pdf |date=20080625192523 }}<!-- application/pdf, 531963 bytes -->}}</ref> [[팔라이올로고스 황조]]는 경제를 회생하고자 노력하였으나 후기 로마 제국은 국내외 경제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였다. 12세기 이후로 [[이탈리아]] 여러 도시국가의 상공업 발전에 밀려나 제국 내 산업은 쇠퇴헤 해군력 제공을 담보로 이탈리아 여러 도시국가에 무역 특권 부여로 무역 이익도 잃은 제국은 쇠퇴일로에 들어섰다. 점차 제국은 교역과 가격, 귀금속 유통에 영향력을 잃었고 어떤 학자들은 화폐 주조권도 통제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판단하기도 한다.<ref name="M806">Matschke (2002), [http://www.doaks.org/EconHist/EHB37.pdf 805–806] {{웨이백|url=http://www.doaks.org/EconHist/EHB37.pdf |date=20080625235853 }} {{웨이백|url=http://www.doaks.org/EconHist/EHB37.pdf |date=20080625235853 }}<!-- application/pdf, 262093 bytes -->}}</ref>
 
교역은 제국의 경제 기반이었다. 섬유는 최요한 수출품이었을 텐데 특히 [[비단]]은 이집트에 수출됐고 불가리아나 서방에서도 유통되었다.<ref name="L723">Laiou (2002), [http://www.doaks.org/EconHist/EHB36.pdf 723] {{웨이백|url=http://www.doaks.org/EconHist/EHB36.pdf |date=20080625235908 }}</ref> 국가는 국내외 무역을 강력하게 통제했으며, [[화폐 주조]]를 독점하였다. 행정부는 금리도 직접 통제하였고 [[길드]]나 조합의 활동도 제한했다. 황제와 제국 관리들은 수도의 물자 공급을 확실히 하고 곡물 가격을 억제하고자 위기 상황에 때때로 개입하기도 하였으며, 행정부는 세금을 이용해 잉여량을 저장했다가 공무원 급료나 공공 사업 투자로 재유통하기도 하였다.<ref name="L3-4">Laiou (2002), [http://www.doaks.org/EconHist/EHB01.pdf 3–4] {{웨이백|url=http://www.doaks.org/EconHist/EHB01.pdf |date=20080625235933 }}</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