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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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자국을 공화국이라고 불러, 북한 지역을 가리켜 '''공화국 북반부'''라는 표현이 흔히 사용된다.
[[중화민국]] 등지에서도
==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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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북조선인민위원회}}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소비에트 연방]]과 [[미국]]이 [[북위 38도#삼팔선|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해 군정통치했다. 이때 [[조만식]]을 중추로 하는 민족주의 세력이 [[평남건국준비위원회]](平南建準委)를 세우자 평안남북도(平安南北道)가 그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군정이 시작되면서 [[한반도]] 적화(赤化)의 거점이 되었다.
[[1945년]] 10월 한반도 북부에서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세워지고나서 [[이북5도행정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성립되어 이 위원회의 이름으로 농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실제 경작민에게 배분하는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원칙으로 하는 [[토지개혁]]을 시행했다. 그 뒤 인민위원회가 설치되고 이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과 [[신민당]]이 연합하여 [[북조선로동당]]을 만들고, 이후 [[남조선노동당]]과 합당해 [[조선노동당]]이 된다. 이후 [[북조선인민회의]]와 [[조선인민군]]이 창설되었다. [[1948년]] 8월 [[최고인민회의]]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9월 9일]] 사회주의헌법을 채택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김일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상]]에 취임했다.
=== 한국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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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영변 핵 시설을 폭격한다고 했을 때 전쟁 위기가 최고조였다. 하지만 당시 조선인민군은 미군과 맞설 수 있는 전쟁수행능력이 없었고 비축물자도 없었다. 전투의욕도 상실한 상태였다.
[[2000년]] [[6월 13일]] 김정일은 [[대한민국]]의 대통령 김대중과 만나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 이후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같은 남북 협력 사업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 [[제2연평해전]]이 발생했다. 한편 2003년에 출범한 참여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나, [[2006년]] 7월 [[2006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미사일 발사 사건|미사일 시험발사]]가 있었으며 [[10월 13일]] [[2006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 실험|핵 실험]]을 실시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2007년]] 10월에는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직할시]]에서 만나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남북정상선언]]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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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시에는 [[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원장이 국가원수직을 겸직하게 하고, 그 아래 내각 [[총리]]를 두었다. 이후 [[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원장인 [[김두봉]], [[최용건]]이 국가원수직을 겸했으며,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제정과 동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국가주석]]직을 신설해 초대 총리인 [[김일성]]을 주석으로 추대했다. 이후 [[김일성]]은 [[1990년]] 국가주석에 재선되었으나 [[1994년]] 사망하였고 그의 아들인 [[김정일]]이 김일성을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규정해 국가주석직은 사실상 폐지된 상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체제는 [[주체사상]]과
=== 최고인민회의 ===
{{본문|최고인민회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본 국가 운영 원칙은 국가는 당(黨, 조선로동당)이 “령도(領導)”하고 당은 수령이 “령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국가 전반의 체제가 작동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 당은 전인민의 대표자들이 모이는 회의체, 즉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정강정책을 실현한다. 그러므로 국가 최고권력기관은 최고인민회의며 헌법에 이러한 권리가 따로 기술되어 있을 정도다. 다만 이러한 정치체계는 대통령 중심제도 의원내각제도 아니므로
=== 국방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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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은 과거에는 정무원으로 불린 기관으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조직 및 인사권을 통해 구성되며 헌법에 의해 정부를 대표하는 권한을 가진다. [[1998년]] [[9월 5일]] 10기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의 헌법개정을 통해 내각으로 그 조직이 변경되었다. 내각은 내각총리 1인과 부총리 3명으로 구성된다. 2005년 5월 30일 금속기계공업성을 금속공업성과 기계공업성으로 분리한 것을 기준으로 볼 때 산하에 3위원회, 29성, 1원, 1은행, 2국을 두고 있다. 그 외에 필요에 따라 임명되는 무임소상도 임의로 구성되기도 한다.
=== 정당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당제를 택하고 있다. 현재 여당은 [[조선로동당]]이며, 수십 년 간 장기집권하고 있다. 그러나 로동당은 이름일 뿐 실제로는 조선로동당이 국가를 관리하며 야당으로는 [[조선사회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이 있으나, 국호에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대 지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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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과의 관계 ===
{{본문|남북 관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각자 자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주장하며 서로를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조선 정권이란 미제국주의자들의 총칼에 의하여 꾸며진 괴뢰정권으로서 미국상전의 지시를 충실히 집행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김일성]]의 말에 따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을 합법 정부 내지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더불어 대한민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보고,
이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국 전쟁]] 후에도 많은 사건을 일으켰는데, 특히 수차례에 걸쳐 [[대한민국]]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시도를 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1968년]] [[대한민국]]에 ‘조선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인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특별시|서울]]에 침투하였던 사건인 [[김신조 간첩일당 청와대 피습사건]]이 있다. 또한 [[1974년]] [[8월 15일]]의 [[문세광]](文世光)에 의한 육영수 저격사건, [[1983년]]에 발생한 [[아웅산묘역 폭탄테러사건]]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비무장지대에 땅굴을 파서 대한민국에 대한 침투를 시도하였으며, [[1976년]] [[판문점]]에서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군사적 도발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무장 [[간첩]] 120명을 15개조로 나누어 [[울진]]과 [[삼척]]지구의 민간인들을 무참히 [[학살]]한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이 있다. [[1987년]]에는 대남공작원 [[김현희]]를 이용하여 [[대한항공 858편]]을 폭파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고, [[1996년]]의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9년]]과 [[2002년]]에 [[황해]] 서북방에서 각각 발생한 [[제1연평해전]]과 [[제2연평해전]], 그리고 [[2008년]]에 [[금강산]]에서 여행 중이던 [[대한민국]] 관광객 박왕자가 피격당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금강산 피격사건]] 등 여러 사건사고가 일어났다. 2010년에는 연평도 일대를 포격하여 군인과 민간인 3명이 사망하였다. 2015년에는 조선인민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목함 지뢰를 설치하여 대한민국 군인 2명이 중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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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과의 관계 ===
{{참고|한일 관계}}
일본은 수교 협상을 통해 관계개선에 나서려 했으나, 일본인 [[납북자]] 문제과거사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일 병합 조약]]에 대한 평가나, 배상문제·청구권문제 등에 대하여도 결말이 나지 않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1962년부터 일본은 한반도에
=== 러시아와의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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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민군은 [[로동 1호]], [[대포동 1호]], [[대포동 2호]] 등 탄도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대포동 2호는 [[미국]]의 영토인 [[알래스카]]를 타격할 수 있는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세계 3위에 준하는 생화학 무기 보유국이기도 하다.
MIG-21 등 전투기들을 무인 항공기(UAV)로 개조하였다. 이란을 통해 무인 정찰기(UAV) 도입을 해서 서해상에서 운용 중이다. 2012년 12월 12일 인공위성 은하 3호 발사에 성공하면서 대기권 재진입 기술도 확보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10,000 ~ 13,000 km 이상의 [[ICBM]] 사정거리를 확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1만 km는 미국 서부 지역까지, 13,000 km는 미국 대부분 지역까지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KN-08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엔진 성능개량 시험을 실시했다. 몇 기를 개발했는지는 확인 할 수 없다.
TEL에 탑재되어 있는데 TEL은 정찰 위성이나 레이다 탐지 사각지역에 숨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위협적인 무기체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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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하천은 대개 산지의 수원지에서 서쪽으로 흘러 [[황해]]로 간다.
가장 긴 [[압록강]]은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국경이다. 다른 주요 하천은 [[대동강]], [[예성강]], [[청천강]], [[재령강]] 등이 있다. 두만강만은 동쪽으로 흘러서 [[동해]]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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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주택을 [[아파트]] 또는 [[문화 주택]]으로 부르며, 이는 크게 3층에서 4층까지 있는 콘크리트 고밀도 건축물을 말한다. 이 또한 공산주의 국가의 법에 따라 주택을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매달 사용료를 내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남한 주택제도와 달리 가정 총노동 월급에서 전기료, 수도료 등을 충당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직업에 따라 주택의 구성이 달라진다. [[당`정`기업소]] 간부들은 독립식 다층 주택으로 정원과 수세식 화장실이 구비되어있는 곳에서 거주하는 반면, 말단 노동자 등은 방 1~2개와 부엌이 딸린 공영주택에서 거주한다. 또한 상위계층은 주택보급률이 굉장히 높은데 일반 주민들은 주택을 배정받기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대표적인 주택지구는 [[평양시]] [[중구역]] 아파트단지와 [[천리마 거리]] 아파트 단지, [[함경남도]] [[단천시]] 신단천동 주택단지와 황해북도 [[개성시]] 청년거리 아파트 단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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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어는 [[조선어]]이며, [[대한민국]]과 동일하게 [[한글]]로 표기된다. 표준어는 [[문화어]]라고 하며,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 방언]]에 바탕을 두고 있다. 표기상 [[한국어의 한자|한자]]의 사용은 완전히 폐지하였으며, [[두음법칙]](예: '''북'''-녀자, '''남'''-여자)과 [[사이시옷]](예: '''북'''-시내물, '''남'''-시냇물)을 사용하지 않고, 자모의 사전 배열 등에서도 [[대한민국]]과 차이가 있다. 어휘는 외래어 대신 고유어를 활용한 어휘를 많이 만들어 쓰고 있다. 영어와 일본어에서 들어온 말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한민국과 달리 러시아어에서 온 외래어가 많다.
특히 고유어인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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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연감]]》에 따르면, 광복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역은 대한민국보다 [[천주교]]와 [[개신교]]가 먼저 전파된 지역으로 교회의 수가 남한보다 더 많았으며 종교 활동도 더욱 활발했다. 광복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는 [[천도교]]도 약 150만 명, [[불교]]도 약 37만 5000명, 개신교도 약 20만 명, 천주교도 약 5만 7000명 등 총계 약 200만 명의 종교인이 있었다. 이는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구의 22.2% 수준이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많은 신도수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탄압을 단행했던 이유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종교가 ‘반동적이며 비과학적인 세계관’으로서 어떤 형태의 종교이든 인간의 의식이 환상적으로 왜곡 반영된 ‘허위적인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ref>[http://www.unityinfo.co.kr/sub_read.html?uid=17912§ion=sc6]</ref>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종교]]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구체적인 내용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정되고 있다. 이는 종교탄압이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자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한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나라에서는 “실제는 종교 활동에 대한 다양한 제약이 있다. [[신앙]]을 가지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있다”라는 견해가 주류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의 통일 사상인 [[주체사상]]이 사실상 종교를 대신하고 있다.”고 추측한다. [[자본주의]] → [[사회주의]] → [[공산주의]]의 단계적 혁명 이론을 가르쳤던 [[황장엽]] 당시 [[김일성종합대학]] 교수가, 주체사상을 취급하지 않은 것 때문에 교수 지위를 박탈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에서 종교를 믿는 신자들은 종교적 탄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건국 때부터 [[1960년]]대까지 종교를 탄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은 「국내의 주된 종교로서 [[유교]], 불교, 기독교, 제종교의 요소를 포괄한 천도교가 있다」라고 발표하고 있다. 다음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종교 단체 목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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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
{{본문|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문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면에서 군사문화와 연관 짓고 있으며 농사나 공장에서의 물자 생산을
=== 예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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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국가주석과 [[김정일]] 조선로동당 총비서의 행적을 찬양하는 문화를 "[[수령형상문학]]"이라고 하는데, 이 문화는 [[1960년대]] 중반부터 만들어졌다. 이 문화는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후계체제 구축을 위해 사용되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주체사상]]을 창시할 수 있게 된 계기이다. 한편, 역사 문학이나 [[사회주의 사실주의]]에 대한 문학, 외국 문학이 있는데, 역사 문학으로 대표되는 사람이 [[홍명희]]와 그의 손자 [[홍석중]]이다. [[홍명희]]의 작품인 "[[림꺽정]]"은 조선 전기의 도적인 [[임꺽정]]을 그린 역사적 장편소설로서, 이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졌고, [[한국]]에서도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갑오농민전쟁]]"도 [[제국주의]]에 맞써 투쟁한 [[전봉준]]의 일대기를 그린 것인데, 이 작품도 역시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홍석중은 홍명희의 손자로써, 그도 역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학의 자랑거리이다. 외국소설로는 중국 소설과 러시아 소설이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다. 시인으로는 조기천과 백하와 신흥국 등 이 있는데, 조기천은 시 "백두산"과 "휘파람"으로 유명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흥시인 [[신흥국]]은 얼마 전 음력설에 풍경을 묘사한 시로 유명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문학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공산혁명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소련의 소비에트 작가동맹을 본따 만든 조선문학예술총동맹(문예총)은 당과 깊이 연관되어 당의 통제를 받으며 철저한 감시를 받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문예정책은 당정책을 반영하는 것인데 한설야는 1953년 9월 26일 전국 작가.예술가 대회에서 진술한 보고에서 "우리의 문학예술은 당적인 문학예술"이라고 천명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 문화 생활과 문화 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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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영화]]를 많이 만드는 데 애를 써서, 자신이 직접 《[[영화예술론]]》이라는 논문을 집필할 정도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영화는 김일성 전 국가주석의 [[일제강점기]] 때 생애를 그린 〈[[조선의 별]]〉, [[1992년]]에 해외동포들의 행적을 그린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예술영화 〈[[온달전]]〉, [[스포츠]]를 장려하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책을 바탕으로 만든 예술영화 〈[[가족농구선수단]]〉, [[이씨조선|조선]] 제 13대 임금 [[조선 명종|명종]] 때 [[도적]], [[림꺽정|임꺽정]]을 배경으로 하는 예술영화 〈[[림꺽정]]〉등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화에서는 정책을 따르도록 선동하거나 사회주의를 유지하고 인민들의 생활조건을 상향시키려는 장면들이 많이 있다.
또한 과학기술을 설명하기 위해서 만든 "과학 영화"가 방송되고 있는데, 관람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다양한 효과를 사용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아동영화"가 인기가 많다. 아동영화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어린이가 볼 수 있도록 만든 영화로 그림을 그려서 만들거나, 인형극을 통해 만드는 경우가 있다(과학 영화도 컴퓨터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으로 활용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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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자주 [[개]]를 잡아먹지 않으나, [[보신탕]]을 전문으로 하는 락랑구역의 평양단고기집과 중구역의 고려단고기집이 있다. (보신탕을 단고기로 한 것은 김일성 주석이 요리사에게 단고기로 부르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경제난을 타파하고, 외화를 모으기 위해 해외에서 소수의 식당들을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서 중국계가 제일 많다. 심지어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 베이징에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식당이 존재하고 있을 정도이다. 해외의 식당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해외에서 온 유학생이나 국내의 요리사들이 직접 그 식당에 가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식당들은 대한민국에서 살다가 이주한 재중동포들이나 중국인들이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끔 손님들이 적은 편이다
=== 의복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정부의 배급제도가 의생활에도 적용되었다. 공급이 원활하게 진행되던 때에는 대다수 주민들이 [[인민반]]에서 공급카드를 발급받은 뒤 각자 상점에 가서 카드를 제시해 자신에게 돌아올 옷감과 의복을 국정 가격으로 구매하여 사용했다. 하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의복 배급은 식량 배급보다 먼저 중단되었고 주민들은 [[장마당]]에서 옷감을 구한다. 작업복을 많이 입었으나 외국과의 교류를 진행하면서 여성은 양복이나 치마같은 것들이 많이 발전했고 머리모양도 파마를 하는 등 외국 문화를 따라갔다.
최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에서 경공업분야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증가하고 있다. <조선신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최근시기 질좋은 [[경공업]]제품을 만들 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갖추어졌다”며 평양양말공장, 신의주방직공장, 보통강신발공장, 평양방직공장 등을 예시했다. 또한 [[김정은]]이 현지지도를 나서는 모습까지 포착되면서 직물생산은 더욱 활기를 띄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 공급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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