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엉녓레: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6번째 줄:
[[1369년]], 쩐 유종(裕宗)이 병으로 위독해졌는데 아들이 없었고, 유종은 즈엉녓레를 후계자로 지정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쩐 왕조의 황통을 단절시키는 것이라며 극력으로 반대하였고, 외척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 황당한 거동은 후세의 사관들에게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유종이 죽고 20일이 지난 음력 5월 25일(서기 6월 29일), 헌자황태후(憲慈皇太后)는 여러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즈엉녓레를 입궁시켜 즉위하도록 하였다. 대월사기전서에 의하면 헌자황태후는 공숙왕 쩐응우옌죽을 쩐 명종(明宗)의 적장자라고 여겼으나 황위를 계승할 수 없었으므로, 즈엉녓레가 쩐응우옌죽의 아들로서 황위를 계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
 
즉위한 뒤, 즈엉녓레는 [[다이딘 (쩐 왕조)|다이딘]](大定)으로 개원하였고, 공숙왕 쩐응우옌죽을 황태백(皇太伯)으로 높였으며, 공정왕(恭定王) 쩐푸(陳暊)의 딸 쩐씨를 황후로 세웠다. 즉위한지 약 1년 반이 지나 양일례는 명령을 내려 헌자황태후를 독살하도록 하였다.
 
즈엉녓레는 전 군주인 쩐 유종과 똑같이 정사를 돌보지 않고 매일 향락을 즐기는 혼용(昏庸)한 군주가 되었다. 그는 심지어 원래의 성인 즈엉씨로 되돌아가고자 하였다. 이는 종실, 백관들 모두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