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엉녓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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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엉녓레'''({{vie|v=Dương Nhật Lễ|hn=楊日禮|eum=양일례}}, ? ~ [[1370년]])는 [[베트남]] [[쩐 왕조]]의 제8대 황제(재위: [[1369년]] ~ [[1370년]])이다. 《명사(明史)》에는 이름이 진일견({{vie|v=Trần Nhật Kiên|hn=陳日熞}})이라고 하였다. 1369년, [[쩐 유종(裕宗)]]이 죽기 전에 조서를 내려 공숙왕(恭肅王) 쩐응우옌죽(陳元昱)의 양자 즈엉녓레로 하여금 즉위하도록 하였다. 즈엉녓레는 명목상 쩐 왕조의 종실인 쩐응우옌죽의 아들이었으나 사실 쩐 왕조의 혈통이 아니었다. 즈엉녓레는 즉위한 후 원래 성인 즈엉으로 되돌아가려고 하였고, 이는 쩐 왕조 종실의 분노를 유발하여 그들로 하여금 즈엉녓레에 반발해 [[쩐 예종 (藝宗9대)|쩐 예종]]을 옹립하게 했다. 예종은 즈엉녓레를 폐위하여 혼덕공({{vie|v=Hôn Đức Công|hn=昏德公}})으로 하였고, 이어서 그를 죽였다.
 
== 생애 ==
[[대월사기전서(大越史記全書)]]》의 기록에 의하면 즈엉녓레는 우령(優伶) 즈엉크엉(楊姜)의 아들이다. 즈엉녓레의 어머니가 임신한 후 공숙왕 쩐응우옌죽이 그녀의 미색을 좋아하여 받아들이고, 즈엉녓레가 태어나자 자신의 아들로 하였다. 이에 즈엉녓레의 성은 쩐씨가 되었고, 쩐응우옌죽은 자신의 아들로 그를 궁중에서 길렀다.
 
[[1369년]], 쩐 유종(裕宗)이유종이 병으로 위독해졌는데 아들이 없었고, 유종은 즈엉녓레를 후계자로 지정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쩐 왕조의 황통을 단절시키는 것이라며 극력으로 반대하였고, 외척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 황당한 거동은 후세의 사관들에게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유종이 죽고 20일이 지난 음력 5월 25일(서기 6월 29일), 헌자황태후(憲慈皇太后)는 여러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즈엉녓레를 입궁시켜 즉위하도록 하였다. 대월사기전서에 의하면 헌자황태후는 공숙왕 쩐응우옌죽을 [[쩐 명종(明宗)]]의 적장자라고 여겼으나 황위를 계승할 수 없었으므로, 즈엉녓레가 쩐응우옌죽의 아들로서 황위를 계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
 
즉위한 뒤, 즈엉녓레는 [[다이딘 (쩐 왕조)|다이딘]](大定)으로 개원하였고, 공숙왕 쩐응우옌죽을 황태백(皇太伯)으로 높였으며, 공정왕(恭定王) 쩐푸(陳暊)의 딸 쩐씨를 황후로 세웠다. 즉위한지 약 1년 반이 지나 양일례는 명령을 내려 헌자황태후를 독살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