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중심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74번째 줄:
다른 사례로, 조르다노 브루노가 화형을 당할 때의 죄목 중 첫 번째와 후에 추가된 약 20가지의 죄목 중 다섯 번째와 관련된 "신이 창조한 행성들 외 다른 행성을 논하고 있으며, 행성에 관한 여러 가지 무지를 드러냄" <ref>Che si trovano più mondi, che tutte le stelle sono mondi, ed il credere che sia solo questo mondo è grandissima ignoranza.</ref>에 대한 목록 중에는 지동설에 관한 내용도 포함이 되어있으며, 이 내용은 이탈리아의 사학자인 Luigi Firpo가 1949년에 낸 『Il processo di Giordano Bruno』(조르다노 브루노 재판)에서 상세히 논해지고 있다. 혹자는 해당 죄문은 헤르메스주의, 칼뱅주의라는 복합적인 요소와 얽혀져있기에 지동설에 대한 반감은 아니다라고 하기도 하지만, 애초에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내용 자체를 비판했다는 점에서 지동설의 기본적인 전제(또는 결론적 입장)에 대해서 기본적인 입장을 내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 당시 기독교가 지동설에 대한 좋지 않은 관점을 교리적 원인으로부터 갖고 있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브루노가 칼뱅파가 되었다는 내용은 브루노 사후 약 100년 후에 발견된 개혁교회 이탈리아 난민 리스트에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떠도는 설인데, 학계에서 그가 칼뱅주의자였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며, 인정한다고 해도 잠깐 받아들였으나 얼마 안 가 칼뱅주의와도 결별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또한, 프톨레마이오스가 "지구가 중심에 있다는 것은, 지구의 가치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며, 지구는 우주적 차원에서 한 점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는 것으로 기독교가 지구중심설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지녔는지 설명하려고 하는 글도자들도 있었는데존재하는데, 애초에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으며, 당시는 기독교가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기 전이었다. 따라서 그의 주장으로 기독교가 지동설과 천동설에 대해 어떠한 교리적 입장을 지녔는지 증명하는 것은 온당한 논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교황청이 지동설을 가설 차원으로 다루는 것을 허용했다는 것은 사실이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가설' 차원으로서 다루는 것을 허용한 것일 뿐, 이를 정설로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니었다. 반론자들은 1630년에 출판된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의 내용을 거론하면서, 마치 이 서적이 지동설에 대한 진지한 설파보다는 천동설론자를 완전히 천치로 만드는 목적 외에 쓰여지지 않았기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탄압을 받은 것마냥 서술하지만, 천동설론자가 천치로 묘사되는 것과는 별개로 진지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참고로 당시 지동설 탄압을 마치 개신교와 가톨릭 간의 대립으로 설명하면서, 예민해진 가톨릭에 의해 제재된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인데, 왜냐하면, 개신교라고 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주류적 흐름을 비판했던 개신교 쪽도 역시 지동설에 대해서 심한 비판을 가했다는 것을 볼 때[* <ref>『신학과 현장』(김승철, 목원신학연구소, 2009)]</ref>, 가톨릭의 제재는 종교 대립으로 예민해진 것 때문이라는 말은 단순히 교리 상의 문제라는 것을 희석시키는 의도로 보일 수밖에 없다. 또한 루터는 "사람들은 하늘이나 태양과 달이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애쓴 한 건방진 점성가에게 귀를 기울인다. 영리해보이기를 원하는 자는 누구이건 어떤 새로운 체계 물론 모든 체계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체계를 고안해 내야 한다. 이 바보는 천문학 전체를 뒤집어 놓으려고 한다. 그러나 성스러운 복음서는 여호수아가 태양에게 정지를 명령했지 지구에게 한 것이 아님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ref>러셀, 『종교와 과학』 참조</ref>라고 지동설을 평하기도 했다.
 
그리고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자금적으로 지원했던 신자들의 존재와 별개<ref>반론자들 중 소수는 이 지원이 지동설 이론에 대한 지원이라고들 하나 이에 대한 근거는 없다.</ref>로, 지동설이 교리와 어긋나는 것이라는 입장을 가진 당시 발언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장 예수회 신부인 잉꼬페르(Melchior Inchofer)는 지동설에 대해 "이단적이면서도 가장 유해한 것이다."라고 평가할 정도였으며, "신의 현현을 반대하는 논증은 지구가 움직임을 보여 주려는 논증에 비하면 오히려 관대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또한 감리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의 경우도 역시 지동설을 이단적이라고 평가했다.<ref>『신학과 현장』(김승철, 목원신학연구소, 2009) p. 17</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