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성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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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장군이 태어날 때 출생지에 큰 별이 떨어졌다는 의미로 낙성대라고 이름이 붙여졌다.<ref>[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17983.html 낙성대·말죽거리엔 무슨 사연 담겼을까]《한겨레》2008-10-24 오후 07:27:47</ref> 조선 초기의 문신인 성현(成俔, 1439~1504)이 쓴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강감찬이 몸집이 작고 귀도 조그마했다고 전하면서 강감찬의 관상은 귀인상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록에는 송나라 사신과 관련하여 전하길, 어느 날 키 크고 잘생긴 선비를 관리 복장을 하게 하고 강감찬은 허름한 옷을 입고 그 뒤에 섰는데, 사신은 한눈에 강감찬을 알아봤다고 한다. 송나라의 사신이 가난한 선비를 보고, “용모는 비록 크고 위엄이 있으나 귀에 성곽(城郭)이 없으니, 필연코 가난한 선비다.” 하고, 강감찬을 보고는 두 팔을 벌리고 엎드려 절하며, “염정성(廉貞星)이“문곡성이 오랫동안 중국에 나타나지 않더니, 이제 동방(東方)에 있습니다.”라고 했다는 기록이다.
 
《[[고려사]]》는 [[강감찬]]을 가리켜 문곡성의 화신이라 했고, 《용재총화》는 염정성의 화신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도 구전되는 설화이라 차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일화에 등장하는 문곡성은 북두칠성의 4번째 별로 문운(文運)을 주관하고 5번째 별인 염정성은 형살(刑殺)을 주관한다는데 북두칠성은 국자 모양의 맨 앞별에서부터 차례로 탐랑성∙거문성∙녹존성∙문곡성∙염정성∙무곡성∙파군성으로 붙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