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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중국에는 [[불교]] 문헌이 한역된 것이 별로 없었으므로 경률에도 착오나 누락이 많았다. 법현은 [[융안]] 3년([[399년]])에 혜경(慧景), 혜응(慧應), 혜외(慧嵬), 도정(道整) 등의 승려와 함께 [[장안]]을 출발해 [[서역]]으로 떠났다. 도중에 [[호탄 왕국]]을 거쳐 6년만에 중[[인도]](중천축)에 닿았고, [[산스크리트어|범어]]를 배우고, 그곳에서 왕사성(王舍城) 등의 불전과 불적을 살펴본 뒤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 [[스리랑카]]를 돌며 《오분률》(五分律), 《장아함경》(長阿含經) 등의 불교 [[책|서적]]을 구하고 [[의희]] 9년([[413년]])에 남해 항로를 따라 청주(지금의 [[산둥성]])로 귀국하였다. 귀국한 것은 법현 한 사람뿐이었다고 한다.
 
법현이 기록한 여행기는 《[[불국기]]》(佛國記)라는 제목으로, 당시 [[중앙아시아]]와 인도에 관한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돈황군|돈황]]에서 유사를 건너던 때의 모습에 대해 「사하(沙河)에는 악령과 뜨거운 바람이 많이 있어서 모두 죽고 단 한 명도 그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다. 하늘에는 새도 날지 않고 땅에는 뛰는 짐승도 없다. 멀리 보아도 눈 닿는 데 없고 갈 곳도 알지 못한다. 다만 죽은 자의 해골이 이정표가 될 뿐이다.」라고 적었다.
 
귀국한 뒤 법현은 건강(建康)에서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를 만나 그가 가져온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대반니원경]]》 등 많은 불교 서적을 [[번역]]하고, [[열반종]] 성립의 기초를 닦았다.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40권을 번역하였다. 법현은 형주의 신사(辛寺)에서 죽었다. 향년 86세. 입적한 뒤, 《오분율》도 불태습(佛駄什)이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