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삼국통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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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수나라|수]]·[[당나라|당]]과 혈투를 전개하는 동안, 신였는 백제를,공격[[의자왕|자왕]](義慈王)은 신라의 대백제 전선(對百濟戰線)의 요지인 [[대야성]](大耶城, 현재의 [[합천]])을 비롯한 40여 성을 함락시켰다.
 
이에 [[김춘추]](金春秋)가 고구려에 원병을 청하는 모험 외교를 감행하였으나, 고구려가 출병의 대가로 [[한강]] 유역의 반환을 요구하여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신라는 [[당나라]]와 동맹을 맺어 백제를 정복하고 이어 고구려를 협공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리하여 [[당 고종]]은 [[소정방]](蘇定方)으로 하여금 백제를 치게 하였다. 신라는 [[김유신]](金庾信) 등으로 하여금 백제를 진공케 하니, 당군은 백강(白江) 좌안(左岸)에 상륙하고 신라군은 탄현(炭峴, 대전의 동쪽)을 넘어서게 되었다.
 
당시 의자왕은 거듭되는 승전에 교만해져 향락에 젖어 있었고, 조정은 간신들이 사리(私利)를 도모하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성충]](成忠) · [[흥수]](興水) 등 충신은 축출되었다. 백성은 거듭되는 전쟁에 지쳐 정부로부터 이반(離叛)되어 백제는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階伯)이 5천의 결사대로 국운을 지탱하려 하였으나 분패하고, 결국 의자왕은 신라에 항복하고 백제는 [[660년]]에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