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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삼전동 동명 유래는 이 마을에 유일하게 밭이 셋 있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원래 이곳은 포구로서 서울근교의 5진(津)중의 하나였는데 다른 곳에는 조수가 올라왔으나, 이 세 곳에는 물이 밀리지 않아 밭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자연 마을 이름은 ‘삼밭게’ 또는 ‘삼전도’(三田渡)라 불렸고, 삼(麻)을 심었기 때문에 마전포(麻田浦)라고도 하였으며 또, 벌판에 옛날 [[장승]]을 세웠던 곳이라 하여 ‘장승골’ 또는 ‘장승벌’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이 삼전도는 [[조선 세종|세종]] 21년에 신설되었는데 한강나루, 노들나루와 함께 [[경강삼진]](京江三津)의 하나로 진부(津夫) 10인이 배속되었으며 이후 [[삼전도]]의 기능이 커지면서 삼전도승이 광진의 나루도 관장하였다.<ref>[http://samjeon.songpa.go.kr/user.kdf?a=songpa.menu.MenuApp&c=1001&cate_id=BC1201002000 삼전동의 유래 및 연혁], 2012년 6월 21일 확인</ref>
* [[1577]]년 경기도 광주목 중대면 삼전리삼전동
* [[1914년]] [[3월 1일]]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삼전리라 칭함.
*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 [[성동구]]로 편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