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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숭덕제는 [[명나라]]의 제도를 모방하여 감찰 기관인 도찰원(都察院, {{llang|mnc|{{ManchuSibeUnicode|lang=mnc|ᡠᡥᡝᡵᡳ<br>ᠪᡝ<br />ᠪᠠᡳᠴᠠᡵᠠ<br />ᠶᠠᠮᡠᠨ}}|Uheri-be Baicara Yamun}})을 설립했다. 도찰원의 임무는 황제이게 간언하고, 버이러와 대신들의 불법을 규찰하며, 닝군 주르간을 감찰하고, 논의와 상주에 참여하며, 사건을 심리하는 것이었다. 도찰원도 버이러들의 권력을 잠식했다.<ref>{{서적 인용|author=이훈|authorlink=|title=만주족 이야기|series=|publisher=너머북스|isbn=9788994606514|page=168}}</ref> 숭덕제는 더 이상 여러 친왕(親王, {{llang|mnc|{{MongolUnicode|ᠴᡳᠨ<br />ᠸᠠᠩ}}|Cin Wang}})과 동등한 자리에 있지 않았다. 그는 이제 유일한 황제([[천자]])였고, 기의 수장들은 관료의 일부분이었다. 이 움직임은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중요했다. 하나는 남쪽의 광활한 땅을 정복하는 데에 적합한 최상의 정치 조직 형태를 제공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명 황제에게 도전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ref>{{서적 인용|author=William T. Rowe|authorlink=|title=하버드 중국사 청 중국 최후의 제국|series=21세기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publisher=너머북스|isbn=978-89-9460627-9|page=40}}</ref>
 
1636년 당시 홍 타이지가 제위에 올랐다고 선포하면서 들이민 근거 중 하나는 10년 전 [[정묘호란]]으로 조선을 정복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행사에 참석한 조선 사신들은 홍 타이지에게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다는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의 예를 거부했다. 홍 타이지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ref>[http://kmib.co.kr/view.asp?arcid=0013084310&code=61171111&sid1=cul#RedyAi 병자호란을 끝낸 건 천연두였다]</ref> 홍 타이지는 조선을 침략하여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홍 타이지는 조선의 사신들의 소동으로 인해 인해 '미완'에 그쳤던 자신의 '황제 즉위식'을 정축년 정월 30일 [[삼전도]]에서 '완성'하고자 하였다. 그는 조선의 사신이 아니라 국왕인 [[인조]]를 출성시켜 의례의 현장에서 자신과 직접 대면하게 함으로써, 묵던의 '황제 즉위식'보다 더 완성도가 높은 의례를 구현하고자 했다.<ref>{{서적 인용|author=구범진|authorlink=|title=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series=|year=2019|publisher=까치글방|page=300~301|isbn=9788972916826}}</ref>
 
홍 타이지는 총 다섯 차례에 걸친 중원 침공 중에 북경성을 포위하기도 하고 북경 인근 지역과 산서·산동의 여러 주현을 약탈하며 많은 전리품을 획득하였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성도 거점으로 유지하지 못했다. 산해관을 피해 화북으로 우회하는 행군이 효과적인 전략이기는 했지만, 산해관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상 진정한 의미의 정복 전쟁으로 발전시킬 수 없었다. 따라서 홍 타이지는 먼저 산해관 외곽의 4개의 성, 즉 금주, 송산, 행산, 탑산을 공략하여 산해관에 접근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