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 (1884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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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큰 부자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수백년 물려 온 모든 재산을, 심지어 친척들이 모두 뜻을 합하여 사회환원한 역사는 세계적으로도 다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엔 대부분 사립대학이 부정입학 등 온갖 부정이 만연했었는데, 최준은 어떤 부정도 없이 아주 모범적으로 대학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5.16 이 터진 이후16이후 최고회의는 대학정비안을대학정비령을 만들어 요건을 턱없이 요건을 강화하여 사립대학들을 궁지에 몰아 놓고 압박했다.
 
이런 압박 속에 이은상을 비롯한 청구대학 이사들은 이후락 비서실장을 통해 박정희에게 대학을 갖다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