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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르족은 6세기 중반 처음 출현했으며, [[카프카스 지역]], [[판노니아 평원]] 일대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사주를 받고 그 지역에 거주하던 유목민족들을 공격했으며, 당시 동유럽을 장악하고 있던 [[슬라브족]]들을 복속시키며 서쪽으로 영토를 넓혀 나갔다. 이들은 출현한지 얼마되지 않아 카프카스에서 [[프랑크 왕국]]과 국경을 맞닿을 정도로 넓은 세력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들의 기원은 확실치 않으나, 중앙 아시아(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 발현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들이 비잔티움 제국과 협약을 맺은 것을 안 [[서돌궐]] 측에서 분노하여 비잔티움 제국을 공격했던 사실을 볼 때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넓은 제국을 건설했던 [[돌궐]]과 적대관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유연 (나라)|유연]]이 돌궐에게 패한 후 일부가 6세기경 현재의 불가리아와 도나우 평원지대에 정착했다고 보기도 한다하지만 근거는 없다. <ref>강인욱, 유라시아 역사기행, 민음사, 258쪽</ref>
 
판노니아의 옛 아바르족은 일찍이 중앙아시아와 캅카스지역에서 서진한 훈족과 에프탈과 밀접한 튀르크 부족으로 이해를 하기도 하며 인도유럽어족에서 많은 부족들이 동화, 분화됨에 서서히 북캅카스어족으로 진행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을 6세기에서 대략 9세기까지 존속한 마지막 아리안계 스키타이로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 큰 의의가 있다.
현재 아바르족은 다게스탄공화국과 체첸공화국 등지에 널리 퍼져 살고 있고 캅카스족에 속한다.
 
오늘날 카프카스에 거주하는 소규모의 아바르 집단이 유럽 아바르로 알려지고 있다.<ref>이희수, 터키사, 대한교과서주식회사</ref>
또한 일부 러시아 학자들은 아바르족이 중앙아시아에서동부로부터 유럽 동부에중앙아시아에 도착하여 유럽을 공격할 때 그 일부가 다게스탄에 사리르 왕국(캅카스 아바르족의 첫 국가)을 세운 것으로 주장하기도 한다.<ref>김혜진, 민족의 모자이크 유라시아,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ref> 하지만 판노니아의 아바르인들과 현재 캅카스 아바르족의 관계는 여전히 불명확하며, 그래서 대다수 학자들은 역사적 연관이 분명하지 않은 것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 카프카스의 아바르족들은 판노니아의 아바르족이 아니다.
 
== 확장 및 몰락 ==
동유럽 판노니아(현재의 헝가리)에 이주한 아바르족은 세력이 확대되자, 비잔티움 제국과의 우호 관계를 청산하고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582년부터 아바르족의 [[바얀 1세]]는 비잔티움을 공격했고, [[사산 왕조]]와 전쟁을 치르고 있던 비잔티움 측은 이 공세에 몹시 고전하였다. 그러나 비잔티움 측은 아바르족의 침략을 584년에는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601년에는 티사 강에서 가까스로 막아낼 수 있었고, 아바르족의 공세는 한동안 멎어들게 된다.
 
그러나 얼마 후 사산 왕조가 비잔티움과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게 되자, 아바르족 또한 사산 왕조와 동맹을 맺고 비잔티움에 대한 공세를 재개하였다. 비잔티움 측은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밀려났고, 아바르족과 사산 왕조의 연합군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626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여 전쟁을 끝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군대는 비잔티움 함대의 해상 봉쇄에 막혀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지 못해 비잔티움의 성들을성을 공격할 수 없었고, 유목 민족인 아바르족은 비잔티움을 성들을 성을 함락할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결국 연합군은 대패함으로써 전쟁은 큰 반전을 맞게 되고, 사산 왕조와 아바르족은 비잔티움의 공세에 더불어 각각 [[이슬람 제국]]과 [[프랑크 왕국]]에 의해 양면에서 공격을 받게 되면서 각각 멸망과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국력이 쇠약해진 아바르족은 주변 국가의 공격에 대응하지 못함은 물론, 내부 반란에 직면했다. 제국 서부에서는 프랑크족 출신 인물이었던 [[사모 (슬라브족의 왕)|사모]]가 슬라브족을 규합하여 [[사모 왕국]]을 건설하고 독립을 선포했으며, 동쪽에서는 지배하에 있던 [[불가르]] 족이 독립해나갔다. 아바르족에게 이를 막을 국력은 남아있지 않았으며, 더 이상 주변 국가에도 위협이 되지 못했다.
 
== 소멸 ==
아바르족은 아바르어란 자체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 표기는 라틴문자나 키릴문자로 대체하기도 하였으며 아랍의 문자를 차용했다고 한다. 지금도 다게스탄과 잉구쉬공화국, 체첸 등지에 살고 있는 아바르족 사람들이 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국력이 쇠퇴한 이후에도 아바르족은 약 150년 정도를 존속했으나, 새롭게 프랑크 왕국의 왕으로 즉위한 [[카롤루스 대제]]의 팽창 정책은 아바르족의 존속에 결정타를 안겼다. 프랑크 왕국의 군대는 791년부터 아바르족을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795년에는 카롤루스의 아들 피핀이 대대적인 아바르족에 대한 공세를 벌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아바르족은 곧 프랑크 왕국에 항복했으며, 얼마 안 가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압당함으로써 아바르족의 국가는 실질적으로 멸망한다. 멸망 후에도 아바르족은 영토 내에 존속하고 있었으나, 동쪽에서 불가르족이 이들을 공격함으로써 아바르족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이들에게 동화된다. 아바르족에 대한 기록은 9세기 말 경을 끝으로 역사에 나타나지 않는데, 아바르족은 훈족과 에프탈의 멸망이후 그 땅을 점유하여 옆의 프랑크족과 대치하다가 프랑크족 등에게 일부가 동화되었고 그 일부는 산 증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아바르족은 역사적으로 아리안계 서방 스키타이(튀르크)의서방스키타이의 마지막 부족이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