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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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균관대학 재단을 촉성, 1000여 대표 참가로 전국유림대회
|url=http://db.history.go.kr/item/imageViewer.do?levelId=npfp_1945_12_10_v0002_0190
|출판사=자유신문|날짜=1945년 12월 10일}}</ref> 이 자리를 통해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할 대학의 수립을 위하여 '성균관대학 기성회'가 조직되었으며 김창숙이 대표가 되었다. 이후 종전의 명륜전문학교 재단을 통합하여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설립되으며설립되었으며, 전국 유림들이 기부금을 모았고 이석구가 재단법인 학린사의 거대한 토지재산을 희사하였다. 이듬해인 1946년 9월 25일 문교부로부터 성균관대학이 정식으로 인가되었다.
 
이처럼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하여 출범한 성균관대학은 문학부와 정경학부의 2개학부였는데 동양철학과, 문학과(국문학전공, 영문학전공, 불문학전공), 사학과가 문학부에 속하고 법률학과, 정치학과, 경제학과가 정경학부에 속하였다. 그러나 1950년에는 [[한국 전쟁]]이 발발해 대학은 부산으로 피난하여 [[부산고등학교]] 안의 임시 천막교사로, [[부산광역시|부산시]] 동대신동의 임시교사로 전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