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 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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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사람들은 자국을 ‘로마 제국', ‘로마인들의 제국'([[라틴어]]: Imperium Romanum, Imperium Romanorum, [[그리스어]]: Βασιλ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 Αρχη τῶν Ῥωμαίων), ‘로마니아'{{#tag:ref|비공식명으로 ‘로마인들의 땅’을 뜻하는‘로마니아'<ref>{{harvnb|Fossier|Sondheimer|1997|p=104}}.</ref> 도 범용됐다. 이 용어는 오늘날 [[루마니아]]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group="주"}}([[라틴어]]: Romania, [[그리스어]]: Ῥωμανία),‘로마 공화국'‘([[라틴어]]: Res Publica Romana, [[그리스어]]: Πολιτ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ref>{{웹 인용|url=http://dio.sagepub.com/cgi/reprint/31/124/47 |title=Nation and Liberty: the Byzantine Example|doi=10.1177/039219218303112403 |publisher=Dio.sagepub.com|date=|accessdate=2010-08-07}}</ref>, ‘그라이키아'(Γραικία),<ref>[[Theodore the Studite]]. ''Epistulae'', 145, Line 19 ("ή ταπεινή Γραικία") and 458, Line 28 ("έν Αρμενία καί Γραικία").</ref>, ‘로마이스’(Ῥωμαΐς)라고 불렀다.<ref>{{harvnb|Cinnamus|1976|p=240}}.</ref>
 
제국은 오랜 세월 다민족 국가이면서도 <ref>{{harvnb|Ahrweiler|Laiou|1998|p=3}}; {{harvnb|Mango|2002|p=13}}.</ref> [[그리스-로마 세계|그리스-로마]] 전통을 계승한 나라였다.<ref>{{harvnb|Gabriel|2002|p=277}}.</ref> 당대 서방과 북방에서는‘그리스인들의 제국'{{#tag:ref|‘임페리움 그라이코룸’(Imperium Graecorum), ‘그라이키아’(Graecia), ‘유나스탄’(Yunastan) 등을 이르는 말이다. 기타 서방에서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제국’(imperium Constantinopolitanum), ‘로마니아의 제국’(imperium Romaniae)으로 부르기도 했다.|group="주"}}이란 표현이 쓰였는데, 왜냐하면 이 나라에서 점차 [[비잔티움 그리스인|그리스적 요소]]가 우세해졌기 때문이다.<ref>{{harvnb|Ahrweiler|Laiou|1998|p=vii}}; {{harvnb|Davies|1996|p=245}}; {{harvnb|Moravcsik|1970|pp=11–12}}; {{harvnb|Ostrogorsky|1969|pp=28, 146}}; {{harvnb|Lapidge|Blair|Keynes|1998|p=79}}; {{harvnb|Winnifrith|Murray|1983|p=113}}; {{harvnb|Gross|1999|p=45}}; {{harvnb|Hidryma Meletōn Chersonēsou tou Haimou|1973|p=331}}.</ref>
 
서방 세계에서는 동로마 제국이라는 명칭이 [[로마 제국]]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거부하는 뜻도 있이서 '그리스인들의 제국'(Imperium Graecorum)이라고 칭하기도 한다.<ref>{{harvnb|Fouracre|Gerberding|1996|p=345}}: "The Frankish court no longer regarded the Byzantine Empire as holding valid claims to universality; instead it was now termed the 'Empire of the Greeks'."</ref> 적들에게서 자신을 지킬 도움이 필요했던 [[교황 레오 3세]]는 로마 제국의 황위가 공위 상태라고 간주하고 서기 800년 [[샤를마뉴]]를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인정하여 대관식을 치렀으므로, 로마의 여황 [[아테네의 에이레네]] 시대 때 (남성 황제가 아니므로) 기존 로마 제국의 권위는 도전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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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겔로스 황조 ====
 
1180년 9월 24일에 마누엘이 죽자, 당시 11살이었던 아들 [[알렉시오스 2세 콤네노스]]가 제위에 올랐다. 알렉시오스는 정치에 무능했고 프랑크인 세력을 등에 업은 [[안티오케이아의 마리아]] 탓에 섭정은 인기를 없었다.<ref name="Norwich291">{{harvnb|Norwich|1998|p=291}}.</ref> 알렉시오스 1세의 손자 [[안드로니코스 1세 콤네노스]]가 어린 황제에게 반기를 들고 결국 정변을 일으켰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인 데다가 군대에게 더 뛰어난 힘이나 재주로 남을 눌러 꼼짝 못하게 하는 지지를 이용해 1182년에 수도로 진군하여 라틴인들을 학살한 <ref name="Norwich292">{{harvnb|Norwich|1998|p=292}}.</ref> 안드로니코스는 정적이 될지도 모를 세력을 제거하고서 1183년 9월에 공동 황제로 즉위했고 알렉시오스 2세를 처단하고 그 사람의 열두 살 난 아내 [[프랑스의 아녜스]]를 자신의 황후로 맞이했다.<ref name="Norwich292"/>
 
[[파일:Schnorr von Carolsfeld - Die Schlacht von Iconium.jpg|섬네일|제3차 십자군이 [[이코니온]]을 점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