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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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 ===
시리아의 인권 (Human rights in Syria) 은 국제 기구에서 심한 비난을 받고 있다.<ref name="w.r.p555">[http://www.hrw.org/world-report-2010 "World Report 2010 Human Rights Watch World Report 2010"], pg. 555.</ref> 1963년 이후, 국가 비상 사태 선언의 지속되는 효력으로 치안 부대에 체포와 투옥의 권한이 있다.<ref name="AmInt2009"/> 이 나라는 자유 선거가 없는 일당 독재 상태로 통치되고 있다.<ref name="AmInt2009">[http://thereport.amnesty.org/en/regions/middle-east-north-africa/syria Amnesty International Report 2009, Syria]{{ {{웨이백|url=http://thereport.amnesty.org/en/regions/middle-east-north-africa/syria |date=20091007231314 }}</ref> 당국은 인권 운동가와 정부 비판자들을 탄압, 투옥하고 <ref name="HRW">[http://books.google.co.uk/books?id=OZ3a4M_oZccC&pg=PA486&dq=%22Human+Rights+Watch+World+Report+2005+Events+of+2004%22+syria&hl=en&ei=3g91TNjTB9mXOJ_C2M4G&sa=X&oi=book_result&ct=result&resnum=1&ved=0CC8Q6AEwAA#v=onepage&q&f=false Human Rights Watch World Report 2005 Events of 2004], [[Human Rights Watch]] 2005. {{ISBN|1-56432-331-5}}.</ref>, 표현, 결사, 집회의 자유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으며 <ref name="AmInt2009"/><ref name=HRW/>, 여성과 소수 민족 차별에도 직면하고 있다.<ref name="AmInt2009"/><ref name=HRW/> 2010년 [[휴먼 라이츠 워치]]의 주장에 따르면 바샤르 알아사드가 권력을 쥐고부터 10년 간 시리아의 인권 상태를 개선시키는 데 실패했으며 <ref name=GUARD>{{뉴스 인용 | url = http://www.guardian.co.uk/world/2010/jul/16/syrian-human-rights-unchanged-assad | work= [[The Guardian]] | first=Ian | last=Black | 제목=Syrian human rights record unchanged under Assad, report says | date= 2010년 7월 16일}}</ref>, 시리아의 인권 상황이 세계 최악의 부류에 속한다고 진술하였다. 5월 5일, [[BBC]] 뉴스는 비무장 민간인에 저격수와 대공 기관총이 사용되고 있다는 다마스쿠스 인권 연구소 (DCHRS) 의 입장을 알렸다.<ref>{{웹 인용|author= Davies, Wyre |url=http://www.bbc.co.uk/news/world-middle-east-13299793 |제목=Syria protests: Rights group warns of 'Deraa massacre' |publisher= [[BBC News]] | date= 2009년 3월 22일 | accessdate= 2011년 5월 8일}}</ref>
 
=== 표현의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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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안정의 핵심 요소는 시리아의 엄중한 감시 기구,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의 인기, 이라크 폭동에서 보여지듯, 정부가 붕괴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종파 간의 폭력 행위 (Sectarian violence) 에 대한 우려이다.<ref>{{웹 인용|url=http://english.aljazeera.net/indepth/features/2011/02/201129103121562395.html |제목=Syria: 'A kingdom of silence' | publisher = [[Al Jazeera English]] |date=|accessdate= 2011년 2월 12일}}</ref>
 
2월 22일, [[다마스쿠스]]의 리비아 대사관 주변에 약 200명의 사람들이 모여, 리비아 정권에 대해 항의하고, 대사의 사임을 요구하였다. 정부의 치안 부대는 시위를 진압했으며 14명이 체포되고 여러 명이 경관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체포된 사람들은 후에 석방되었다. 3월 6일, [[타임 (잡지)|타임지]]는 시리아의 젊은이들이 여전히 반정부 운동에 가담하고 있지만, 계기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리발 알아사드 (Ribal al-Assad) <ref>[[리파트 알아사드]]의 아들.</ref> 는 아랍의 봄의 다음 도미노가 시리아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3월 15일, 시리아 각지의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확대되기 시작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bbc.co.uk/news/world-middle-east-12757394|제목= Middle East unrest: Syria arrests Damascus protesters| publisher = [[BBC News]]|accessdate= 2011년 4월 19일}}</ref> [[하사카]], [[다라]], [[데이르에조르]], [[하마 (도시)|하마]]에서 정부에 대한 수천 명의 반정부 시위가 전개되었다. 반체제 세력 측의 보고에 의하면, 치안 부대와의 충돌이 일어났다고 하며, [[다마스쿠스]]의 경우에는 200명 정도의 작은 집단에서 1,500명까지 인원이 급증하였다. 다마스쿠스에서는 1980년대에도 이 정도의 반정부 시위는 볼 수가 없었다. "2011년 시리아 혁명" (Syrian Revolution 2011) 이라는 공식 페이지에 [[카이로]], [[니코시아]], [[헬싱키]], [[이스탄불]], [[베를린]]의 반정부 운동 지원 이미지가 내걸렸다. 리비아에 인연이 있는 시리아 혁명 지지자들이 파리의 시리아 대사관에 밀려 들었다는 미확인 정보가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Fresh Protests Erupt in Syria |author = |url=http://www.theepochtimes.com/n2/content/view/53074/ | work = [[The Epoch Times]]|date=|accessdate= 2011년 3월 15일}}</ref><ref>{{뉴스 인용 |제목=السوريون يكسرون جدار الخوف بالتظاهر في قلب دمشق | publisher = [[YouTube]]/Al Arabiya |url=https://www.youtube.com/watch?v=rRHRxUxRbxo |date=|accessdate= 2011년 3월 15일}}</ref><ref>{{뉴스 인용 |제목=ردّدوا هتافات تدعو لمحاربة الفساد وفتح باب الحريات | work = [[Al Arabiya]] |url=http://www.alarabiya.net/articles/2011/03/15/141661.html |date=|accessdate= 2011년 3월 15일}}</ref><ref>{{뉴스 인용 |제목=الاف السوريين يثورون في قلب دمشق و المحافظات مطالبين بالحرية |publisher=sawtbeirut.com |url=http://www.sawtbeirut.com/news-in-arabic/world-now/16474-syria-revolution-2011-march-15.html |date= |accessdate=2011년 3월 16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319034725/http://www.sawtbeirut.com/news-in-arabic/world-now/16474-syria-revolution-2011-march-15.html |보존날짜=2011년 3월 19일 |깨진링크=예 }}</ref><ref>{{뉴스 인용 |제목=مظاهرة شباب الثورة في تركيا | publisher = [[YouTube]]/[[Al Jazeera]] |url=https://www.youtube.com/watch?v=7AbjW0Kuhl8 |date=|accessdate= 2011년 3월 16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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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시리아에서 지난 10년간 가장 심각한 소요 사태가 발생하였다.<ref name=aljaz18311>{{뉴스 인용 |제목= Clashes erupt at protests in Syria |publisher = [[Al Jazeera English]] |url=http://english.aljazeera.net/news/middleeast/2011/03/201131817214964640.html |date=|accessdate= 2011년 3월 18일}}</ref> 금요일 예배 후 온라인으로 "존엄의 금요일" (جمعة الكرامة) 이 선언되었으며, 정부 부패 의혹의 해결을 촉구하는 수천 명의 반정부 시위가 각지 시가지의 거리에서 벌어졌다.<ref>{{웹 인용|url=https://www.youtube.com/watch?v=oC55uPBKYqU |제목=Violence flares at Syrian protest |publisher= [[YouTube]]/[[Al Jazeera]] |date=|accessdate= 2011년 3월 18일}}</ref> 지역 치안 부대의 지휘하에 반정부 시위자들에 대한 폭력적인 진압이 이루어졌으며, 반정부 시위자들은 "신, 시리아, 자유" 그리고 부패 반대 구호를 외쳤다.<ref name=bbc18311>{{웹 인용|url=http://www.bbc.co.uk/news/world-middle-east-12791738|제목=Middle East unrest: Two killed at protest in Syria |publisher= [[BBC News]]|date= 2011년 3월 18일 |accessdate= 2011년 3월 18일}}</ref>
 
[[다라]]의 거리는 소요 사태의 초점이 되고 있었으며, 3월 20일에는 수천 명이 다라 거리에 쏟아져 나와 3일간 비상사태법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쳤다. 이 때 치안 부대의 발포로 1명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상하였다.<ref name="AJSyria20March">{{뉴스 인용 |제목=Syria to free child prisoners |author=Al-Jazeera |url=http://english.aljazeera.net/news/middleeast/2011/03/2011320113138901721.html |newspaper=|date= 2011년 3월 20일 |accessdate= 2011년 3월 20일}}</ref> 시내 [[바트당]] 본부 청사 및 [[라미 마클루프]] (Rami Makhlouf) 가 경영하는 통신 기업 시리아텔 (Syriatel) 의 건물에 불이 났으며 <ref>{{뉴스 인용|url=http://www.theglobeandmail.com/news/world/africa-mideast/syrian-protesters-set-fire-to-ruling-partys-headquarters-palace-of-justice/article1948865|제목=Syrian protesters set fire to ruling party’s headquarters, Palace of Justice|work=The Globe and Mail }}</ref>, 다음날 자셈 (Jassem) 에서 수백명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는데, [[바니야스]], [[홈스]], [[하마 (도시)|하마]]에서도 비슷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고 전해졌다.<ref name=irtimes22311>{{웹 인용|url=http://www.irishtimes.com/newspaper/world/2011/0322/1224292773018.html|제목=US condemns Syria crackdown|publisher=Irish Times|date=2011년 3월 22일|accessdate=2011년 3월 22일|보존url=https://archive.today/20121205233409/http://www.irishtimes.com/newspaper/world/2011/0322/1224292773018.html|보존날짜=2012년 12월 5일|깨진링크=아니오}}</ref><ref>{{뉴스 인용|제목=Protests spread to southern Syrian town Jassem|newspaper=Ya Libnan|date= 2011년 3월 21일|url=http://www.yalibnan.com/2011/03/21/protests-spread-to-southern-syrian-town-jassem/|accessdate= 2011년 3월 21일}}</ref>
 
이에 바샤르 알아사드는 몇 가지 회유책을 제시했으나, 군중은 계속해서 증가하며 다라의 오마리 모스크 주변에 모여 반정부 시위를 계속하였다. 요구 내용은 모든 정치범의 석방, 반정부 시위자를 살해한 자에 대한 재판 실시, 48년에 걸친 시리아 비상사태법의 철폐, 확대된 자유, 그리고 부패의 종식이었다. 이 날 다라의 전화 회선이 끊어지고, 시내 곳곳에 검문소가 설치되어 병사가 배치되었다. 또한 히즈브 우트타흐리르 (Hizb ut - Tahrir, 1953년 범이슬람국가 건설을 목표로 세워진 이슬람 과격 단체) 은 바트당 정권에 대한 반정부 시위의 확대에 주도적인 역할을 함과 동시에 시리아 내에서 반정부 시위 활동과 전세계 시리아에 대한 반정부 시위 활동을 조직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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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바샤르 알아사드는 200명 이내의 정치범을 석방한다고 발표하면서, 반정부 시위자들에 대한 정부 측의 첫 유화책을 제시하였다. 다음날, 알아사드의 미디어 고문인 [[부사이나 샤반]]은 사전 예고 없이 비상사태법의 철폐를 발표하였다. 3월 29일, 시리아의 신문 알 와탄 (Al-Watan) 은 주요 각료의 교체를 알렸다. 며칠 후 바샤르는 [[무하마드 나지 알오타리]] 총리가 이끄는 내각을 총사퇴하게 하였다. 단, 새로운 내각이 형성되어 공식 발표될 때까지는 잠정적으로 총리를 계속한다고 판단되었다.<ref name=AJSyriaGovQuit>{{웹 인용|url=http://english.aljazeera.net/news/middleeast/2011/03/201132975114399138.html |제목=Syrian cabinet resigns amid unrest |author= |publisher=aljazeera.net |date= 2011년 3월 29일 |accessdate= 2011년 4월 15일}}</ref>
 
바샤르에게 충성하는 군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시리아의 아마드 바데르 하순 (Ahmad Bader Hassoun, 시리아의 대무프티로, 대무프티는 이슬람교의 최고 종교법 결정권자.) 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모든 국민에게 자유를 요구하며 항의할 권리가 있다. 그렇지만 나는 말한다. 유혈의 배후에 있는 모든 사람은 유죄가 될 것이다. 항의하는 사람에 대해 발포하는 군인은 없다. 그들은 자위를 위해 상대편의 공격에 맞서서 싸울 뿐이다. 무엇인가가 일어난 후, 사람들은 화해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나라에는 타락한 사람이 있는데, 타락한 사람은 유죄 선고를 받지 않아선 안됩니다." <ref>{{웹 인용 | url = https://www.youtube.com/watch?v=TbXu-Yh2Qc8 | 제목 =شام – مفتي سوريا يعلن نتائج التحقيقات في أحداث درعا | publisher = [[Al Jazeera]]/[[YouTube]] | date= 2011년 3월 26일 | accessdate= 2011년 4월 10일}}</ref> 3월 29일, 다마스쿠스, [[알레포]], [[하사카]], [[홈스]], [[타르투스]], [[하마 (도시)|하마]]에서는 [[바샤르 알아사드]]를 지지하는 수십만 규모의 시위가 열렸다.<ref name=Ynetnews290311>{{뉴스 인용|제목=Assad supporters 'loyal to nation'|author=|newspaperYnetnews=|date= 2011년 3월 29일|url=http://www.ynetnews.com/articles/0,7340,L-4049313,00.html|accessdate= 2011년 3월 29일}}</ref><ref>{{뉴스 인용|제목=Syria unrest: Pro-Assad rallies in Damascus and Aleppo|publisher= [[BBC News]]|date= 2011년 3월 29일|url=http://www.bbc.co.uk/news/world-middle-east-12892870|accessdate= 2011년 3월 29일}}</ref><ref>{{웹 인용|url=http://www.dp-news.com/pages/detail.aspx?l=2&articleId=79305 |제목=Mass Popular Rallies Prevail Syrian Provinces in Support of National Unity, Security and Stability |publisher=DP-News |date= 2011년 3월 29일 |accessdate= 2011년 4월 10일}}</ref> 3월 30일, 바샤르 알아사드는 폭동을 선동한 외국인을 비난하며, 부사이나 샤반이 언급한 비상사태법의 철폐를 선포하지 않고, 장래의 검토 과제에 둔다는 연설을 하였다.<ref>{{웹 인용|url=http://english.aljazeera.net/news/middleeast/2011/03/2011330135615434966.html |제목=Syria's Assad warns of 'conspiracy' – Middle East – Al Jazeera English |publisher=English.aljazeera.net |date= 2011년 3월 31일 |accessdate= 2011년 4월 10일}}</ref> [[유튜브]]에 올려진 [[CNN]]의 보고에서는, 수요일에 연설을 끝낸 알아사드의 차를 한 여성이 공격했다는 시리아 국영 TV의 영상이 나타났다.<ref>{{웹 인용|url=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oyS3WkwZAjM |제목=الهجوم على سيارة بشار الاسد بعد خطاب |publisher=[[CNN]]/[[YouTube]] |date= 2011년 3월 30일 |accessdate= 2011년 4월 10일}}</ref> 라타키아에서는 바샤르의 연설에 실망한 사람들이 시가지의 거리로 뛰쳐나왔으며, 경관들은 이에 발포하였다.<ref>{{웹 인용 | url = http://www.reuters.com/article/2011/03/30/syria-protest-latakia-idUSLDE72T1ZQ20110330 | 제목 = Protests in Latakia after Assad Speech&nbsp;– Residents | publisher = [[Reuters]] |date=| accessdate= 2011년 4월 10일}}</ref><ref>{{웹 인용|url=http://en.trend.az/regions/met/arabicr/1853160.html |제목=Syrian police fire at protesters in Latakia &#124; Arabic region &#124; Trend |publisher=En.trend.az |date= 2011년 3월 30일 |accessdate= 2011년 4월 10일}}</ref> 다음날 시리아의 국영 시리아 아랍 통신 (SANA, Syrian Arab News Agency) 은 알아사드가 4월 1일부터 공무원 급여를 인상한다는 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을 전했다.<ref>{{웹 인용|url=http://www.nowlebanon.com/NewsArchiveDetails.aspx?ID=256392|제목=Assad issues decree to raise wages|publisher=NOW Lebanon|date=2011년 3월 31일|accessdate=2011년 4월 10일|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419113204/http://www.nowlebanon.com/NewsArchiveDetails.aspx?ID=256392|보존날짜=2011년 4월 19일|깨진링크=예}}</ref>
 
===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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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알자지라는 반체제 활동가들의 말을 인용해 이날 금요 예배 이후 군경의 강경 진압으로 [[홈스]], [[이들리브]], 다마스쿠스 교외의 베르제, [[다라]]에서 총 23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하였다. 다음 날에는 [[홈스]]에서 전날 숨진 10명을 기리는 장례식 중 군의 발포로 11명이 숨진 사실이 보도되었다.<ref>[http://www.ytn.co.kr/_ln/0104_201105210221025315 시리아 반정부 시위대에 발포...23명 사망]</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3867383 시리아軍, 시위 희생자 장례식에 발포…11명 사망]</ref> 유혈 사태가 끊임 없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사무총장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은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073690 나토 총장 "시리아 군사개입 계획없어"]</ref> 5월 24일, 시리아의 여러 인권 단체들은 시리아 시위의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섰음을 밝혔다.<ref>[http://www.ytn.co.kr/_ln/0104_201105250121053111 "시리아 시위 사망자 1,000명 넘어서"]</ref> 다음날에도 금요 예배 이후 반정부 시위가 전개되고, 반정부 시위대와 이를 진압하기 위한 군 사이에 유혈 충돌이 일어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085475 시리아서 수만명 금요 시위..곳곳 유혈충돌]</ref>
 
5월 27일, 지난 4월 29일 다라 지역에서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13살 소년 [[함자 알하티브]] (Hamza Al-Khatib) 가 고문 흔적이 가득한 시체로 집에 돌아오자, 시리아인들과 국제 사회의 분노가 빗발쳤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017110&cp=nv 시리아軍, 시위참가 13세 소년 고문살해… 유엔·美 “진상 밝혀라” 거센 비난]</ref><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02/2011060200144.html 시리아혁명 상징… 13세 소년 함자]</ref> 5월 29일, [[홈스 주]]의 탈비셰흐와 라스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으며, 정부의 탱크와 중기관총을 동원한 유혈 진압으로 11명이 살해되고, 무수한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3881525 시리아軍 탱크 동원 발포, 시민 11명 사망]</ref> 탈비셰흐와 라스탄 이외에, 다라, 바니야스, 탈칼라크에서도 반정부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이 계속되었다.<ref>[http://www.ytn.co.kr/_ln/0104_201105300602150903" 시리아군, 탱크 투입해 시위 진압...7명 사망"]</ref> 5월 30일, 반정부 시위자들과 정부군 간의 첫 무장 충돌이 일어났으며 <ref>[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486282 시리아 반정부 시민들, 정부군과 첫 무장충돌]</ref>, 시리아의 집권당 [[바트당]]은 전국민대화위원회를 구성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5090924 시리아 집권당, 전국민 대화 위원회 구성] 연합뉴스 2011.6.01 2013.5.28 확인</ref>
 
=== 6월 ~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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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탄압에 대해서 [[미국]]도 영국과 프랑스가 제안하는 결의안을 지지하는 자세를 분명히 하였으며, 6월 16일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아사드의 국민에 대한 탄압의 정지를 요구하고, 대화를 요구하였다.
 
6월 19일, 시리아 반정부 세력은 알아사드 정권을 축출하는 싸움에 앞장서기 위해 조직화된 조직인 국가위원회 (National Council)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5120614 시리아 반정세력 "국가위원회' 창설]</ref> 를 설립했다고 발표하였다.
 
6월 20일, 아사드는 헌법 개정을 포함한 국민과의 대화를 실시할 의지를 보이는 등 유연한 자세를 보였으나, 반정부 시위의 기세는 약해지지 않았고, 24일에는 시리아 전역에서 다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에는 수만명이 참가했으며, 치안 부대의 발포로 시민 15명이 사망하였다. 아사드가 선언한 국민과의 대화는 7월 10일 행해진다고 발표되었다.
 
시리아군의 터키 접경 지역에 대한 공격으로 터키 국경 지역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졌으며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3929017 시리아軍, 터키 국경지역 압박 지속…긴장감↑]</ref>, 6월 27일 시리아 야권의 첫 공개 회의가 열렸으며, 이 회의에서는 시리아의 민주화라는 목표는 같으나, 의견의 차이가 있는 강경파와 협상파의 의견이 맞섰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28/2011062801618.html 시리아 야권 첫 공개 회의]</ref><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6282202135&code=970209 시리아 야권, 대정부 투쟁 방법론 이견]</ref>
 
7월 8일, [[1982년]]에 [[하마 대학살]]이 일어났던 [[하마 (도시)|하마]]에서 45만명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으며, 시리아 주재 미국 대사 로버트 포드가 시위를 지지하기 위해 하마를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프랑스 대사 에릭 슈발리에도 7월 7일 하마를 방문한 바 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09/2011070900189.html 시리아 하마서 45만명 시위… 美대사 전격 방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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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 연합뉴스
}}</ref>
러시아는 9월 30일에는 실제로 IS 반군 퇴치를 명분으로 시리아에 첫 공습을 단행하였으나 이번 군사작전은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러시아가 이날 공습한 홈스는 IS가 아닌 반군들이 점령한 지방이다. <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01/2015100100310.html
|제목 = 러, 26년만에 中東 군사개입… IS 격퇴 명분 시리아 공습
537번째 줄:
|확인날짜 = 2015년 10월 6일
|매체 = 연합뉴스
}}</ref> 러시아군이 폭격을 시작한 이래 20일까지 모두 370명이 사망했는데 그 중 3명중 1명꼴로 민간인으로 미성년자 36명이 포함돼 있다고 시리아인권관측소(SOHR)가 주장했다. SOHR는 또 러시아가 라타키아 주의 자발알아크라드 지역을 공습해 반군 사령관과 반군 가족 등 최소 45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ref>{{뉴스 인용
|url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0/20/0200000000AKR20151020205100108.HTML?input=1195m
|제목 =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 20일간 반군 등 370명 사망"
|확인날짜 = 2015년 10월 20일
|매체 = 연합뉴스
}}</ref> 한편 미국과 러시아는 10월 20일 시리아 상공서 상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ref>{{뉴스 인용
|url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0/21/0200000000AKR20151021004352071.HTML?input=1195m
|제목 = 미국·러시아, 시리아 상공 '충돌방지' 양해각서 서명(종합2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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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군 개입설 ===
영국의 일간 더 타임스는 레오폴도 신트라 파리아스 쿠바 혁명무력부 장관이 이끄는 병력 약 300명이 시리아에 도착했다고 주장했다. 만약 쿠바군이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다면 이는 [[라울 카스트로]]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20일 하바나에서 만나 회동한 지 1개월 만이다. <ref>{{뉴스 인용
|url = http://www.newsis.com/pict_detail/view.html?pict_id=NISI20150921_0005926919
|제목 = 라울 카스트로와 대화 나누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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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드-푸틴 정상회담 ===
러시아군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반군에게 연일 폭격을 가한 이 후 아사드 대통령은 10월 21일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아사드가 2011년 3월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이후 외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국 정상들은 러시아의 시리아 내 군사작전 상황과 테러와의 전쟁 등에 대해서 논의했다고 전했다. <ref>{{뉴스 인용
|url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0/21/0200000000AKR20151021150200108.HTML?input=1195m
|제목 = 시리아 알아사드 러시아 방문…푸틴과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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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의 시리아 공습 ===
시리아 정부군의 독가스 공격이 있은 후 이틀 뒤 미국은 시리아의 공군 비행장을 공습했다. 공습은 시리아의 알샤이라트 공군 비행장으로 화학무기 공격을 감행한 시리아 전투기들이 이륙한 곳이다. 미군은 알샤이라트 공군 비행장을 향해 약 60∼70발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번 공격은 미국의 정권이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을 상대로 한 첫 공격이다. <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59511&ref=A
|제목 = 美, 시리아 비행장에 미사일 폭격…화학무기 공격 응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