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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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 200px
|국가 =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수 = 6
|명칭 = 국무령
|취임일 = [[1926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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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초기 ===
==== 출생과 가계 ====
도산 안창호는 [[평안남도]] [[강서군|강서]](江西) 초리면 7리 봉상도(도롱섬)에서 [[1878년]] [[11월 9일]] 농부인
[[공조]][[참의]]를 지낸 [[안종검]]의 17대손으로, [[조선 세조|세조]] 때의 재상 [[안지귀]], [[조선 중종|중종]]대의 정승 [[안당]]은 그의 방계 선조들이었다.<ref>17대조 안종검의 형 안종약의 손자와 증손으로, 안창호에게는 15대 방조와 14대 방조가 된다.</ref> [[안중근]], [[안공근]] 일가는 안종검의 형제인 [[전라도]][[관찰사]] 증 [[병조]][[참판]] [[안종신]]의 후손으로 역시 그의 먼 친족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계는 몰락하여 [[평안남도]]로 이주하여 농사를 짓게 되었다. 그의 처음 이름은 치삼이었다. 그러나 10세가 되어 학교에 다닐 무렵 이름을 창호로 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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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년) 16세때 안창호는 [[평양]]이 [[청일전쟁]]으로 파괴당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동학농민운동]]을 겪으며 [[청나라]]와 [[일본]]군의 진입을 보고 자신이 구국의 대열에 나서야 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할아버지 안태열이 반대했고 온 집안의 반대가 있었으나, 그는 홀로 [[경성부]]로 가려 했다. 결국 삼촌의 도움으로 비밀리에 가출하여 차를 타고 [[경성부]]로 올라갔다. 이어 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운영하는 구세학당(救世學堂) 보통부에 입학하였다.
무작정 [[경성]]에 올라온 안창호는 어느 날 [[경성부|경성]] [[정동제일교회]]가 있는 골목을 지나치다가 '배우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먹고 자고 마음대로 공부할 수 있으니 우리 학교로 오라' 고 권하는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를 만난 것을 계기로 장로교에서 설립한 구세학당(求世學堂)에 들어가 공부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산수, 지리,세계사,과학 등 새로운 학문을 배우며 새로운 세계를 접한다. 또한 구세학당 재학 중 송순명의 전도로 [[장로교]]에 입교하였다. 장로교로 개종하면서 자신에게 개화 사상을 준 필대은에게도 [[기독교]]를 소개하였다.
==== 교육 계몽 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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