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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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8년]](성종 9년) : 숭례문이 기울어짐. 그 시기의 적절성으로 수리를 미룸. <ref>[http://sillok.history.go.kr/id/kia_10903020_002 《성종실록》] 90권 9년 3월 20일, 2번째 기사. 박숙진이 백성들의 사역에 대한 시기 적절성을 아뢰니 이를 수락하다</ref><ref>[http://sillok.history.go.kr/id/kia_10907019_002 《성종실록》] 94권 9년 7월 19일, 숭례문은 일손이 부족하니 수리를 미루라고 명하다</ref>
* [[1479년]] [[4월 2일]] : 숭례문 중수 완공.<ref name="cha.go.kr" /><ref name="서적 인용9788958720966" />
* [[1907년]] : [[다이쇼 천황|요시히토]] 일본 황태자가 방한하자 [[일본 제국]]은 "대일본 제국의 황태자가 머리를 숙이고 문루 밑을 지나갈 수 없다"는 이유로 숭례문과 연결된 성곽을 헐어버렸다. 성곽을 헌 자리에 도로와 [[서울전차|전차]]길을 내고, 숭례문 둘레에 화강암으로 일본식 석축을 쌓았고, 문앞에는 파출소와 가로등을 설치했다.<ref name="세계20010806">{{뉴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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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날짜 = 2016-03-21
}}</ref>
<!--확인이 필요함 <ref>{{뉴스 인용 |제목='남대문 근접 감상' 계획 무산… 문화재委 "안전위협" 불허 |출판사=동아일보 |날짜=2000-02-09}}</ref>-->
* [[2003년]] : 일제가 1907년에 헐어버린 성곽을 숭례문 좌우로 10m씩 복원했다.
* [[2005년]] [[5월 27일]] : 1907년 일제에 의해 도로 속에 고립되었던 숭례문 주변에 광장을 조성·단장함.<ref name="연합-20050527-1">{{뉴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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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YTN TV
|확인날짜 = 2016-03-21
}}</ref> 기존의 '숭'(崇)자 부분에 갈라진 부분도 메웠으며, 고증을 통해 정확하다고 밝혀진 지덕사 소장 탁본을 토대로 기존의 변형된 글씨('崇'자와 '禮'자의 일부 등)를 보다 원형에 가깝게 살려냈다. 테두리목은 연결부위가 심하게 파손된 관계로 다시 걸었을 때의 위험에 대비하여 완전히 교체했으며, 최고라 일컬어지는 <ref name="연합20090703-복구"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刻字匠)인 오옥진과 단청장(丹靑匠)인 홍창원이 참여했고<ref name="정책브리핑20090703-정부">{{웹 인용
|url = http://www.korea.kr/policy/mainView.do?newsId=148672885
|제목 = ‘숭례문 현판’ 옛 모습 되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