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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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3후보 모두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 복권을 공약으로 내세워 논란을 빚기도 했다.
[[1997년]] [[4월 6일]],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에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국민대화합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에 대해 찬성입장을 밝힐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김윤환]] 신한국당 고문도 "[[김영삼]]대통령에게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을 건의하였다"는 보도가 나옴으로써 집권당인 [[신한국당]] 내부에서는 [[전두환]] [[노태우]]의 형 집행이 확정되기도 전에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논의가 오가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4060032910101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4-06&officeId=00032&pageNo=1&printNo=16070&publishType=00010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에 대해 입장 밝힐 예정] 1997.4.8 경향신문</ref> <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40600209101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4-06&officeId=00020&pageNo=1&printNo=23501&publishType=00010 李(이)대표全(전)|盧(노)씨 사면건의 검토 金潤煥(김윤환)고문"대법 刑(형)확정후 실시 이미 건의"]1997.4.6 동아일보</ref>
[[1997년]] [[4월 17일]]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형 집행이 확정되자 집권당인 [[신한국당]] 내부에서 본격적으로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에 대해 논의되기 시작했다. 당시 신한국당의 [[김윤환]] 고문과 대구경북쪽 인사들을 비롯한 구 여권 출신 대선주자들은 종전부터 사면에 찬성하는 쪽에 섰다. 김윤환 고문은 "부정축재 한 거 환수하고, 여러 가지 한다면은 죄는 주지만은 벌은 안 주었으면 하는 그런 심정이다." 라는 발언으로 전두환 노태우의 처벌에 봐주기식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당내에서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 복권에 대해 찬성하는 방향으로 당내 분위기를 주도해나갔다.
<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65839_19482.html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 최종 판결후 사면 문제 제기] 1997.4.17 mbc뉴스</ref>
7월 22일에는 법무부가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에 대해 실무검토를 마쳤고 광복절 무렵에 사면될수 있다는 뉴스까지 나오며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에 대해 "언제든지 사면시킬 수 있다"고 "준비되었다"는 법무부의 입장을 보도했는데, 결국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은 언제든지 대통령과 정부의 명령만 있으면 대선 이전에 준비가 완료되었던 셈이다. 법무부는 대통령 특별 사면의 경우 법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는 추징금 문제를 집중 검토했다. 노태우 씨의 경우는 추징금에 해당하는 재산을 대부분 보전 처분해 상관이 없지마는, 전두환 씨는 추징금 2,295억원의 10% 정도만 확보되어 있고 전두환의 경우 재산 추적에 진전이 없어, 나머지 2천억 원에 대해서는 집행 불능 결정을 내리고 이를 사면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법무부는 사면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라 수감자의 건강이 나쁘거나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적용하는 형집행 정지도 검토했다. 그러나 형 집행 정지는 명분이 약하고 언제든지 재수감 될 수 있어 전, 노씨 두 사람이 거부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법무부는 보고 있다.
가석방은 형기의 1/3분을 마쳤을 때만 가능해 당초부터검토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전,노 씨를 풀어주는 길은 특별 사면밖에 없지만 전적으로 대통령의 의중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법무부는 매우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보도함으로써 이미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사면 준비는 대선이전에 완료되었고 김영삼과 정부의 말 한마디면 곧바로 사면될 수 있었던 형국이었다. <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1557_19482.html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팔일오 사면 실무 검토 ] 1997.7.22 mbc뉴스 </ref>
 
집권당인 [[신한국당]]에서 이렇게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대해 논의가 오가자 [[1997년]] [[8월 31일]], 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 후보는 간담회에서 "[[김영삼]] 대통령 임기중에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하여 동서화합의 길이 열리도록 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이어 "그들(전두환 노태우)이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우리도 똑같이 대응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3100209101008&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8-31&officeId=00020&pageNo=1&printNo=23638&publishType=00010 全(전)|盧(노)씨 사면결정金(김)대통령 임기내" 金大中(김대중)총재 국민회의 ]1997.8 .31 동아일보</ref> <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3100329101003&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8-31&officeId=00032&pageNo=1&printNo=16203&publishType=00010 全(전)·盧(노)씨 현정권서 사면해야” 김대중총재 밝혀] 1997.8.31 경향신문</ref> <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68472_19482.html 김대중 총재,김대통령 임기내 전직대통령 사면 요청] 1997.8.31 mbc 뉴스</ref> 그리고 다음날인 9월 1일 [[SBS]] 대통령 후보와 함께라는 프로그램에서 김대중 총재는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용서론을 강조했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68482_19482.html 국민회의와 자민련, 두 전직 대통령 사면 시기 이견] 1997.9.1 mbc뉴스 </ref> 이렇게 김대중후보가 [[전두환]] [[노태우]] 사면을 내세우자 [[경향신문]]은 "화해의 정치인'부각 영남 끌어 안기6共(공)세력들도 포용 색깔론 차단 효과까지 ‘용서’광주여론도 한몫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김대중))총재가 정치권의「뜨거운 감자"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0100329106004&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01&officeId=00032&pageNo=6&printNo=16204&publishType=00010 '화해의 정치인'부각 영남 끌어 안기6共(공)세력들도 포용 색깔론 차단 효과까지 ‘용서’광주여론도 한몫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김대중))총재가 정치권의「뜨거운 감자] 1997.9.1 경향신문 </ref> 그리고 [[10월 23일]], [[새정치국민회의]] [[박정수]] 부총재는 국회 본회의 연설에서 "[[김영삼]]대통령이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김대중]]후보가 당선되면 대대적인 사면이 단행될 것"이라고 밝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02300329102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0-23&officeId=00032&pageNo=2&printNo=16252&publishType=00010 "全(전)·盧(노)씨 사면 바람직"] 1997.10.23 경향신문 </ref> <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02300289101010&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10-23&officeId=00028&pageNo=1&printNo=3016&publishType=00010 집권하면 대사면 단행” 국민회의 국회 대표연설 박정수 국민회의 부총재] 1997.10.23 한겨레 </ref> 이날 [[김대중]] 후보를 대신해 대표 연설에 나선 [[새정치국민회의]] [[박정수]] 부총재는 집권 정치 보복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김대중]]후보의 약속을 거듭 강조하고 아무런 전제 조건을 달지 않은 채 전두환·노태우 前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촉구했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0297_19482.html 국민회의, 전두환.노태우씨 사면 촉구] 1997.10.23 mbc뉴스 </ref>
그에 대응하여 [[9월 1일]] [[신한국당]] 대선후보인 [[이회창]]은 보수세력의 연합과 국민적인 지지를 얻고 [[김대중]] 후보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론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김영삼대통령에게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추석 전에 사면해 줘야 된다고 요구한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68481_6187.html 신한국당 이회창,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추석전 조기 석방 건의] 1997.9.1 mbc</ref> <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68514_6187.html 김영삼 대통령.이회창 대표,두 전직 대통령 특별 사면 파문 관련 심야 긴급 회동] 1997.9.2 mbc</ref> <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0100329101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01&officeId=00032&pageNo=1&printNo=16204&publishType=00010 전노씨 추석 이후로 사면] 1997.9.1 경향신문</ref>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이회창의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조기석방에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야 된다"며 이회창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0300099102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7-09-03&officeId=00009&pageNo=2&printNo=9849&publishType=00010"全(전)·盧(노) 추석전 사면 不可(불가)"]1997.9.3 매일경제</ref> 당시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앞다투어 전두환 노태우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사회 각계에서도 개탄의 분위기가 쏱아졌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1100329105005&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11&officeId=00032&pageNo=5&printNo=16214&publishType=00010 한가위'정치오염'] 1997.9.11 한겨레신문</ref> 당시 [[김영삼]]대통령은 9월 12일, 당초 전두환 사면에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이회창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으나 다시 말을 바꿔 대선 전에 사면을 할 것이라며 입장을 선회한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180032910100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18&officeId=00032&pageNo=1&printNo=16218&publishType=00010 全(전)·盧(노)씨 대선前(전) 사면 검토] 1997.9.18 경향신문</ref> 이렇게 이회창이 [[전두환]]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감옥에 있는 [[전두환]]이 이회창에게 "고맙다"며 "우리 때문에 정치적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냐" 화답할 만큼 매우 기뻐했던 것으로 밝혀졌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400329104010&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24&officeId=00032&pageNo=4&printNo=16224&publishType=00010 옥중 전씨 사면건의 고맙다, 이회창 대표에 구두 메세지] 1997. 9.24 경향신문</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400209105004&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24&officeId=00020&pageNo=5&printNo=23659&publishType=00010 李(이)대표-全(전)씨 비밀메시지 오갔다 사면파동후 변호사 통해] 1997. 9. 24 동아일보</ref> 그에 대해 이회창 후보도 전두환의 화답에 "고생 많으시다. 추석때 나오시기를 바랬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아쉽다"고 전두환측에게 화답한 것으로 밝혀졌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400209105004&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24&officeId=00020&pageNo=5&printNo=23659&publishType=00010 李(이)대표-全(전)씨 비밀메시지 오갔다 사면파동후 변호사 통해 ]동아일보 1997.9.24 </ref> 당시 [[한겨레]]에서는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추석전 [[전두환]] [[노태우]] 두분의 석방을 바랬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아쉽게 됐다"고 [[전두환]] 측근들에게 화답하였다고 보도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400289126004&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09-24&officeId=00028&pageNo=26&printNo=2991&publishType=00010 사면 노력해줘 고맙다” 전씨, 이회창대표에 인사말] 1997.9.24 한겨레</ref> 그리고 이회창은 9월 24일, cbs와 경실련과의 간담회에서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대해 "전직 대통령이 구금상태에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대통합 차원에서 석방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전두환 노태우 사면론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400289104006&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09-24&officeId=00028&pageNo=4&printNo=2991&publishType=00010 이회창, 대표인선 원점 재검토] 1997.9.24 한겨레</ref> 이는 곧 경쟁자인 [[김대중]]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론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회창]]과 [[김대중]]이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 복권 공약을 내세운 것에 대해 [[이인제]]도 경쟁적으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 복권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2096_6187.html 97대선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경남,부산 유세,집권후 정계] 1997.12.15 mbc</ref> <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1600289104003&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12-16&officeId=00028&pageNo=4&printNo=3066&publishType=00010 이인제 pk다지기] 1997.12.16 한겨레</ref>
<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1600329104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16&officeId=00032&pageNo=4&printNo=16303&publishType=00010 빠른 시일 내에 전노씨 사면, 이인제 후보 기자회견서 밝혀] 1997.12.16 경향신문</ref> 결국 이렇게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3후보 모두가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 복권을 경쟁적으로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12월 18일]] 대선에서 이회창은 [[김대중]]후보에게 39만표차로 떨어져 낙선하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인 [[1997년]] [[12월 20일]], 김영삼대통령과 김대중대통령 당선자와의 협의로 사면 복권되었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2221_6187.html 전두환과 노태우 특별사면 결정] 1997.12.20 mbc</ref> 당시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은 [[김영삼]] 대통령의 제안에 [[김대중]]대통령 당선자가 이것을 수용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는데 [[김대중]]당선자는 [[12월 21일]], 일산자택에서 "이제는 국민 통합이 중요하다"며 [[전두환]] [[노태우]] 사면을 지지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2100289104004&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12-21&officeId=00028&pageNo=4&printNo=3071&publishType=00010 전두환 노태우 사면 한나라 국민회의 국민신당 모두 환영의사] 1997.12.21 한겨레신문</ref> 이런 사면에 대해 낙선한 [[이회창]]후보 측근도 "이회창쪽에서도 추석전 조기사면을 요구한 만큼 [[김대중]]당선자도 사면을 주장했으니 당연한조치"라고 평했고 낙선한 [[이인제]]후보쪽에서도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대해 "이제는 국민대화합의 계기가 되어야 하고 매우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210020910700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21&officeId=00020&pageNo=7&printNo=23744&publishType=00010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사면에 여야 모두긍정적 반응] 1997.12.21 동아일보 </ref>
[[12월 21일]], [[김대중]]당선자가 [[김영삼]]대통령과 협의에 의해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한 것에 대해 외국 언론들은 용기있는 결정이라며 평가했다. [[뉴욕타임스]]지는 [[김대중]] 당선자가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에 동의한 것은 자신의 쓰라린 과거를 묻어둘 의사가 있음을 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고 미국의 ABC방송은 김대중 당선자가 40년간에 걸친 고난의 정치역정을 용서로써 마무리 짓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ABC방송은 이어 김 당선자의 용서는 경제회생이라는 어려운 임무를 떠안게 된 새 지도자로서 정치적인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김 당선자의 이번 조치가 국가 화합과 지역감정 해소, 그리고 경제위기 극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2254_19482.html 김대중 당선자의 전,노 전직대통령 사면은 용기있는 결정] 1997.12.21 mbc뉴스 </ref> [[뉴욕타임스]]는 "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화합책의 하나로 김대중(金大中(김대중))대통령당선자는 두 명의 전임 독재자들에 대한 사면에 동의했다. [[김영삼]]대통령 측 대변인은 [[김대중]]당선자가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대해 동의했다고 밝혔으나 [[김대중]] 당선자측은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대해 우리가 그들([[김영삼]], [[이회창]] [[신한국당]] 대선후보, [[전두환]], [[노태우]])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 뿐"이라고 밝혀 사면에 대한 둘의 미묘한 신경전을 보도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2200209109004&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22&officeId=00020&pageNo=9&printNo=23745&publishType=00010 "한국 全(전)- 盧(노)사면은 국민화합책" 미) 뉴욕타임스 본사 특약·본지 독점게재] 1997.12.22 동아일보</ref> 당시 사면에 대해 [[1997년]] [[12월 22일]]자 [[동아일보]]에서도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은 유력 대통령후보들이 모두 대화합을 명분으로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움으로써 대선 후 사면은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다"라고 보도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2200209107001&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22&officeId=00020&pageNo=7&printNo=23745&publishType=00010 全(전)-盧(노)씨 사면 「12.12사태」서「12.22석방」까지 뒤바뀐 영욕]1997.12.22 동아일보</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