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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義慈王)의 아들로 정비 소생이다. [[부여효|부여 효]](扶餘 孝), [[부여태|부여 태]](扶餘 泰), [[부여용|부여 용]](扶餘 勇), [[부여융|부여 융]](扶餘 隆), [[부여연|부여 연]](扶餘 演) 등은 그의 형이었다. 또한 [[백제]](百濟) 멸망 후 [[일본]](日本)에 정착한 [[선광왕]](禪廣王/善光王)은 그의 형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두 기록을 종합해 보면 [[부여풍]](扶餘豊)은 [[631년]] 외교사절로 [[왜국]](倭國)에 30년간 거주하고 있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백제 의자왕]](百濟 義慈王)이 [[630년]] 왕자 풍왕(王子 豊王)을 보내 질(質)로 삼았다"<ref>{{서적 인용 |제목= [[일본서기]](日本書紀) | 저자= |연도= 720 |장= [[:s:zh:日本書紀/卷第廿三|卷第廿三 舒明天皇]] |인용문=三年...三月庚申朔、百濟王義慈入王子豐章爲質。 }}</ref> 고 적고 있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도 "일찍이 왜에 질(質)로 가 있던 옛 왕자 [[부여풍]](扶餘豊)을 맞아 왕으로 삼았다"
[[일본서기]]와 [[속일본기]], [[신찬성씨록]] 등에는 부여풍에게는 일본여인 다우기고(多宇氣古)의 딸이 왕비였다 한다. 그러나 그의 부인 다우기고(多宇氣古)의 딸은 친정아버지의 이름만이 전할 뿐, 생몰년대와 자세한 행적은 알려져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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