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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제23회 [[사법시험 (대한민국)|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1983년]]부터 [[1995년]]까지 판사로 재직하였다. [[1993년]] 제3차 [[사법파동]]에 참여하여 소장 판사들과 함께 사법부의 반성과 개혁을 촉구하는 건의서를 대법원장에게 전달하였다.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끝으로 판사직에서 물러났고 [[1996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ref>이재성.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227253 ‘조작 간첩’ 함주명이 묻는다, "국가여 그 짓을 또 하려는가"]. 한겨레. 기사입력 2014년 4월 7일. 최종수정 2014년 4월 21일.</ref> <ref name="신장"/>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법무법인 지평]]의 대표 변호사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2003년]] [[노무현 정부|참여정부]]에서 제55대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개혁적인 업무 추진과 발랄한 언사로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79&aid=0000002646 이석태, "중수부 권한 집중, 일선 검사 소외 등 부작용 우려"]. 노컷뉴스. 2004년 6월 17일.</ref> 또 꼭짓점 댄스를 잘 춰 '강효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4년]] [[대한민국 17대 총선|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측의 출마 권유가 있었으나 물리치고 장관직을 계속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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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호주 제도}}
 
[[2000년]] 강금실은 논문 《호주제 폐지를 위한 법적 접근》를 [[이석태]] 변호사와 함께 저술하였다. 해당 논문에서 강금실은 "호주제는 배우자나 가족 사이의 주종관계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명백히 [[헌법]]의 평등권 보장 취지와 인권 이념에 반한다. 호주제가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일제시대 봉건적 유교이데올로기와 일본 천황제 파시즘이 결합해 남한 사회에 정착한 이후 권위주의 정권이 이를 적극적으로 정권 유지에 부합하는 제도로 유지·고착시켰기 때문이다. 호주제는 단순히 남성 중심의 문화적 의식구조에 의해 유지된 것이 아니라 구한말 봉건제적 세계관의 한계를 지닌 복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림세력이 조직적으로 호주제 폐지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호주제는 우리 사회에 너무 오래 뿌리박혀 있었기 때문에 국회의 입법을 통한 방법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과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통해 위헌 결정을 받아내는 소송 전략을 제시하는 바이다. 최종적으로 [[유엔 인권 이사회]]에 제소하는 방법도 있다. 호주제 폐지 후의 대안으로 가족별 호적의 편제방법, 주민등록제도와의 일원화 등을 검토할 수 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시대에 설치된 주민등록제도와 관련한 호적제도의 문제들을 검토하고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고 지적했다.<ref name="이준">이준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0009947 강금실 법무 "호주제는 헌법 위반"]. 경향신문. 2003년 3월 3일.</ref> <ref>윤종석.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327952 강 법무 '호주제 폐지' 논문 공저]. 연합뉴스. 2003년 3월 2일.</ref>
 
[[2003년]] 3월,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 장관 강금실은 "법무부는 법의 집행뿐 아니라 ‘소수자 집단’의 인권 향상에도 적극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 남녀불평등을 야기하는 대표적인 독소 조항 '호주제'의 폐지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라고 말하며 호주제 폐지를 공언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고, [[2005년]] 3월에 민법 개정이 이루어졌으며, 3년 후인 [[2008년]] [[1월 1일]]부터 새로운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되었다.<ref name="이준"/> <ref>이유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8&aid=0000099358 호주제 폐지 이끈 우정의 드라마]. 한겨레. 2005년 2월 16일.</ref> <ref>이인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045716 "호주제 폐지, 강금실과 이뤄낸 여성 장관 합작품"]. 한겨레. 2010년 5월 30일.</ref> <ref>이복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310&aid=0000036837 장관, 호주제 폐지 위해 헌법재판소에 서다]. 여성신문. 2014년 12월 11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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