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령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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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新羅)와 당의 연합군 (나당 연합군) 에 의해 [[고구려]] (高句麗)가 멸망한 후, [[대조영]]은 부친 [[걸걸중상]](乞乞仲象)을 따라 당의 영주(營州)로 들어갔다. [[696년]] [[5월]], [[거란]]의 [[이진충]] (李盡忠)과 [[손만영]] (孫萬榮)이 당 왕조에 반란을 일으켜 혼란이 일어난 틈을 타, [[걸걸중상]]과 [[말갈]] (靺鞨) 추장 [[걸사비우]] (乞四比羽)는 봉기하려는 준비를 했고, [[측천무후]] (則天武后)의 유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고구려]]가 지난 날 통치했던 영토의 동쪽에 세력을 일으켰다.
 
[[당나라]]가 [[이해고]]를 옥검위대장군(玉鈐衛大將軍)임명하여 12만 대군을 출병시켜 전투가 벌어졌고, [[걸사비우]]와 [[대걸걸중상]]은 이때 전사하였다. [[대조영]]은 [[말갈]]족과 [[고구려]] 출신의 인물들로 구성된 [[걸사비우]]와 [[걸걸중상]]의 세력을 규합하여 당군에 대항하였다. [[이해고]]는 천문령 전투에서 대조영 부대를 추격해오다 영주도(營州道)의 길목에서 매복해있던 대조영에게 군사들을 거의 잃고 패배하였다 <ref>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070120000159 </ref>[[대조영]]은 결국 천문령에서 [[당나라]] 대군을 완전 격파하였고 [[발해]]를 건국할 기반을 닦게 되었다. [[698년]], [[대조영]]은 오늘날 [[지린성]] (吉林城)에 있는 [[동모산]] 아래에서 [[발해|진]]을 세웠다.
 
== 천문령의 위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