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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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597년 통제사 이충무공이 수군을 거느리고 진도 벽파진 아래에 주둔하고 있다가 울돌목으로 들어가는 목에서 왜군을 크게 쳐부수었다."</b><br>
 
비문에는 통제사 이순신이 진도 벽파진 아래 주둔하고 었었음을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난중일기에는 첩보를 통해 1597년 9월 15일에 벽파진에서 우수영(右水營) 앞바다(임하도)로 수군 진지를 급하게 옮겼다. 따라서 "주둔하고 있다가"라는 표현이 맞다. 또한 울돌목(鬱陶項)으로 들어가는 목(項)에서 전투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울돌목(鬱陶項)과 목(項)은 서로 다른 장소의 지형임을 알 수 있다. 명량(鳴梁)으로 들어가는 입구(入口)에 좁은 수로(水路)가 있는데 그곳은 임하도(林下島)이다. 해남명량대첩비는 임하도에서의 해전을 기록한 것이다.<br>
 
<b>▶그 중에서 울돌목의 싸움은 가장 통쾌한 승리였다.</b><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