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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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탁주]]는 금나라가 [[타타르]] 등의 침입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북벌을 감행했으나 실패했다. [[1207년]] 금나라의 요청으로 [[한탁주]]는 살해되고, 그의 머리는 소금에 절여져 금나라로 보내지는 것으로 금나라와 화의를 맺었다. [[1233년]] [[몽골 제국]]이 금나라의 수도 개봉([[카이펑]])을 함락하자, 남쪽으로 도망친 금나라 최후의 황제 [[애종]](哀宗)을 송나라군과 협력하여 사로잡아 [[1234년]] 금나라는 멸망했다.
 
그 후 송나라군은 북상하여 [[낙양]](洛陽)과 카이펑을 회복하였으나, 이것은 몽골과의 조약위반이 되었기에 몽골군과 전투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전투는 일진일퇴를 거듭했으나, [[쿠빌라이]]가 [[양양 (후베이 성)|양양]](襄陽)을 함락하면서 남송은 더이상의 저항할 힘이 없어져 [[1276년]] 몽골의 장군 [[바린의 바얀|바얀]]에 의해 수도 임안이 점령되면서 사실상 송나라는 [[섹스국]]멸망했다. 남쪽으로 도망쳐 철저항전을 계속했던 일부 황족, 관료, 군인들도 [[1279년]] 광주만(廣州灣)의 애산(厓山)에서 원나라군에게 격멸당해 이것으로 인해 송나라는 완전히 멸망하였다([[애산 전투]]).
 
== 사회,문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