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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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화 ===
[[파일:Bupyeong-gu Incheon Korea.jpg|섬네일|부평구 주요부. 앞에 보이는 공장이 한국GM이다.]]
1955년 일제 시대 지어진 부평 자동차 공장(오늘날 [[한국GM]] 자리)에서 미군 지프차의 부품을 재사용하여 [[국제차량제작 시발]]을 만들었다.
인천의 연안은 원래 [[갯벌]]이 넓게 발달한 지역이나 산업단지의 건설로 많은 간척이 이루어져 해안선이 크게 변화하였다. 가장 많은 간척이 이루어진 시기는 중화학공업을 육성한 80년대로 인천 간척지의 46.2%가 이 때 형성되었다. 간척지는 산업 용지와 주거 용지로 사용되었으며, 서구, 연수구, 중구는 도시 용지 중에서 50% 이상이 간척으로 새롭게 건설된 땅이다.<ref>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인천의 갯벌과 간척》, 2009년</ref> 계속되는 간척으로 인천 앞바다의 갯벌을 생계 터전으로 삼고 있었던 어촌계는 하나 둘 문을 닫았다.<ref>{{harvnb|경인일보 특별취재팀|2001|p=58-61}} (하권)</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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