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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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목인아, 목인아 네가 우리 민족에게 큰 죄를 지었구나!}}
 
[[1938년]] 초 그는 병상에서 일본 천황 무쓰히토(睦仁, [[메이지 천황]])를 규탄하는 소리를 일갈하여 병원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해 [[6월]]전 해인 1937년 여름 병상에서 도산은 선우씨의 손을 잡고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입 안이 마르고 혀가 잘 돌지 않아서 말을 못하였다. 몸이 극도로 수척하여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수염은 희고, 머리의 반은 누렇고 반은 희어 황백색이었다. 물을 숟가락에 떠서 입술에 축여드리니 비로소 말을 하였다.<ref name="gyul00"/>
 
{{인용문2|너무 슬퍼하지 마오. 부인과 아이들 평안하오? 이렇게 어려운 곳을 오니 참 반갑소. 내 홑이불을 들고 내 다리와 몸을 보오. 이렇게 되곤 사는 법이 없소. 나는 본래 [[심장병]]이 있는 중 대전 감옥에서 [[위]]까지 상한 몸으로 이번 다시 종로서 유치장에서 삼복 염천 좁은 방에 10여 명이 가득 누웠으니, 내 몸은 견딜 수가 없었소. 의사의 말이 나는 지금 일곱 가지 병이 생겼다고 하오. 지금 이가 상하고 치아가 빠졌고, 폐간이 상하고, [[복막염]], [[피부염]] 모두 성한 곳이 없소. 그 종로서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 나는 지금 아무것도 먹지 못하니, 전신에 뼈만 남고 피가 말랐소. 나를 일으켜 안아 주시오.<ref name="gyul00"/>}}
 
그가 만년에 [[경성]]의 한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얼굴이 많이 부어 있는 상태였다. 그 해1938년 [[3월 10일]] 안창호는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현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향년 61세를 일기로 [[간경화]]와 [[소화불량]], [[폐렴]], [[위장병]] 등의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 그는 자신이 총애하던 애제자 [[유상규]]의 묘소 근처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다.<ref name="고문치사1"/> 그의 장례식은 [[흥사단]]과 [[수양동지회]] 회원의 주도로 거행되었고, [[윤치호]], [[이광수]], [[김성수 (1891년)|김성수]], [[여운형]], [[여운홍]], [[윤치영]], [[장택상]] 등이 참석하였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