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 (1967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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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투표에서 과반득표자가 나오지 않자 정일형 전 부총재는 이재형 부총재 지지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결선투표 결과 유진산 수석부총재가 과반득표로 새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는 박정희 정권의 정치공작에 힘입은 것이기도 했다.<ref>http://www.한국현대사.com(김진국{{깨진 링크|url=http://www.xn--3e0bt9h99mg9tbya.xn--com(-jy4pr3b229i/ }} 저 | 민연 | 2000.02.01) 184페이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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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산 수석부총재가 과반득표로 새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는 박정희 정권의 정치공작에 힘입은 것이기도 했다.<ref>http://www.한국현대사.com(김진국{{깨진 링크|url=http://www.xn--3e0bt9h99mg9tbya.xn--com(-jy4pr3b229i/ }} 저 | 민연 | 2000.02.01) 184페이지</ref>
 
=== 신민당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 후보 지명대회 ===
유진오 총재의 뇌졸중으로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는 [[1970년]] 9월로 미뤄졌는데, 5월에 유진산 수석부총재가 대표로 선출되자 [[김영삼]] 전 원내총무를 중심으로 40대 기수론이 제기된다. 이후 [[이철승]] 전 국회부의장과 [[김대중]] 의원이 합류하며 세대교체 바람이 일자 유진산 대표는 경선을 포기하는 대신 후보지명권을 요구했고, 이에 동의한 김영삼, 이철승은 김영삼 전 원내총무로 단일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