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필요없는 부분을 삭제하였습니다 |
|||
231번째 줄:
[[2018년]] [[4월 27일]]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여 한국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료하기로 합의했다.
1945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5년 전,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맞은 [[한반도]]는 해방 직후 타의에 의해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미국]]과 [[소련]]의 군정이 끝나고 한반도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북한은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을 설득하여 한반도를 적화 통일하려는 계획을 수립하고 준비를 해 나갔다. 소련은 소련군이 한반도 [[38선]] 이북에 진주한 이래, 아시아 공산화를 목적으로 북한에 소련을 대리할 수 있는 공산 정권을 세우고, 한반도의 통일을 방해하면서 침략의 기회를 엿보아 왔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현대사회의 발달/시련과 민주주의의 발전/6·25전쟁#전쟁발발 직전의 정황|전쟁발발 직전의 정황]]〉 <!--“1945년 8·15광복으로 한반도 38˚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은 아시아 공산화를 목적으로 북한에 공산정권을 세우고, 우리나라의 통일을 방해하면서 침략의 기회를 엿보아 왔다.”--></ref>[[중국 공산당]]은 1949년에 [[중화민국]]을 대륙에서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현대사회의 발달/시련과 민주주의의 발전/6·25전쟁#전쟁발발 직전의 정황|전쟁발발 직전의 정황]]〉 <!--“중공(中共)이 국부(國府)를 물리치고 대륙에 공산정권을 세웠으며, ”--></ref> 반면에, 미국은 주한미군이 철수를 완료(1949년 6월)<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현대사회의 발달/시련과 민주주의의 발전/6·25전쟁#전쟁발발 직전의 정황|전쟁발발 직전의 정황]]〉 <!--“ 1949년 6월에 이미 주한 미국군이 철수를 완료했으며 ”--></ref> 하고, 미국의 극동방위선이 타이완의 동쪽 즉, 일본 오키나와와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이라고 선언([[애치슨 선언]], 1950년 1월)<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001120032920100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0-01-12&officeId=00032&pageNo=1&printNo=1051&publishType=00020 美의 對極東防衛線은...]〉 《京鄕新聞》 (1950년 1월 12일) 1쪽. <!--“애치슨 國務長官은 美國의 極東防衛線이 臺灣東쪽에 있다고 宣言하였다. 則 「애」 長官은 十日의 上院外交委員會의 秘密會談에서 美國의 太平洋防禦線은 臺灣의 東쪽에 있으며 日本沖縄 比律賓을 連絡하는 線이라고 말하였다. 이 애치슨 長官의 言明은 秘密會談後 코나리- 上院外交委員長으로부터 發表
된 것이다.”--></ref> 을 하는 등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 원조를 최소화해 나갔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미국은 소련 공산권과의 직접적인 군사 충돌이 제3차 세계대전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국제적인 정세를 고려하였으며, 소련 역시 그러한 이유로 북한에 대한 공개적인 지원을 중단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