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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차골부(安車骨部) ===
안차골부는 백돌부의 동쪽에 있다고 되어 있다. 오늘날 [[아십하아센허]](阿什河)를 [[만주어]]로 알추카(阿勒楚客, {{llang|mnc|{{만몽 유니코드|ᠠᠯᠴᡠᡴ᠋ᠠ}}|}})라 했고, 금대 [[여진어]]로는 안춘(按出虎, {{llang|juc|Antʃu-un}})라고 했다.<ref group="주">'금'을 의미한다.</ref> 이는이와 안차골과 발음이 아주흡사하다고 흡사하다. 이런추정하는 점에서 안차골을 아십하 유역에 있던 말갈이라 보는 데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아십하 하류의 황가외자(黃家崴子), 황산(黃山) 남북산성자, 묵리가(墨里家)와 고태자(高台子) 등지에서 발견된 문물들이 곧 안차골부의 문화 유존이라고 보고 있다.<ref name="SUK"/>
 
 
이 유적들은 러시아인 러리에즈니에커부가 1937~1947년에 조사했다. 그 가운데 황가외자는 [[흑룡강성]] [[하얼빈시]]의 동쪽으로 10~11km 거리의 아십하 우안에 위치하고 있는 고분군이다. 황가외자둔에서 서남쪽으로 1km 떨어져 있다. 이 고분군에서 출토된 도기는 몸체 장식과 가장자리 테두리로 보아 황산고성 유지와 고태자 흙구릉상에서 발견된 도기와 유사하다고 한다. 흑회색·흑갈색·회갈색·황갈색의 도관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모래가 섞여 있으며 물레를 사용하여 만들거나 물레에서 다듬은 것이었다. 도기들에는 구연부나 경부에 화문 등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으며,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구운 것이다.
 
이외에 귀걸이와 철촉 등도 출토되었고 인골과 말, 돼지, 개, 그리고 쥐의 뼈들도 발견되었다. 이 중 말뼈가 가장 많았으며, 그 중에서도 대부분 턱뼈와 치아가 많았다고 하는데, 이는 "죽은 자를 묻을 적에는 관곽이 없었으며, 그가 타던 말을 잡아 제사한다."고 한 『신당서』의 구절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아마도 장례가 끝난 후 말을 순장하는 의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발굴자는 이를 읍루족의 후예인 말갈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았는데, 위치로 보아 안차골 말갈의 유적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불녈부(拂涅部) ===
불녈부는 위치 비정상 차이가 많은 부의 하나인데, 그 중에서도 [[흥개호]] 일대로 보는 설과 [[목단강]] 유역의 영안 지역으로 보는 설이 가장 많다. 영안에서는 말갈로부터 [[발해]] 시기로 이어지는 고분군이 대규모 발견되었는데, 다른 말갈 고분과 성격 차가 현저해서 주목 대상이 되고 있다. 영안시 발해진(渤海鎭)의 서석강고분군(西石崗古墳群), 즉 홍준어장고분군(虹鱒魚場古墳群)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