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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이 짱깨세끼야 닌 내가 꼭 죽인다 너는 꼭 죽인다 니 에미 조선족 짱께년도 꼭 같이 죽인다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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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편집내용을 프린트해보면 아주 짱께스러워 어디서 짱깨 옹호글을 쓰고 있어 니같이 조선족 짱깨가 기어와서 하는 짓이 그따구니까 니하고 니 에메 짱깨년을 내가 대한민국에서 무서워서 살지 못하게 만들어 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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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세종 완안옹'''(金 世宗 完顔雍, [[1123년]] ~ [[1189년]])은 [[금나라]] 제5대 황제(재위 : [[1161년]] ~ [[1189년]]). [[금 태조]] 아구다의 손자. 태조 완안아골타의 셋째 아들 완안종보完顔宗輔(여진명 : 와리타訛里朶)의 아들이다. 여진 이름은 '''오록'''(烏祿). 시호는 광천흥운문덕무공성명인효황제(光天興運文德武功聖明仁孝皇帝). 어머니는 추와지(雛訛只)의 딸 정의황후(貞懿皇后, 중국성은 이씨). 황후는 여진 오림답부(烏林荅部)의 수장의 석토흑(石土黒)의 딸의 오림답씨(烏林荅氏, 소덕황후(昭德皇后)).오림답
 
== 생애 ==
12세에 아버지를 잃었다. 부친의 사후 발해의 귀족 출신이었던 어머니는 여진의 관습에 따른 다른 친척과의 혼인을 거절하고 승려가 되었다. 금나라 황제 [[해릉왕]]은 '''완안옹(完顔雍)'''을 경계하였으며 그를 제남윤(濟南尹)으로 파견하면서 처를 연경에 두고 가라고 했다. 완안옹의 처인 오림답씨(烏林答氏)는 해릉왕의 음욕을 알면서도 남편을 떠나보내고 자신은 하북(河北) 양향(良鄕) 고절진(固節鎭)에서 투신해 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