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태그: m 모바일 웹
18번째 줄:
시조 '''김총'''(金摠)은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甄萱)의 어가(御駕)를 인도한 인가별감(引駕別監)을 지내고 평양군(平陽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평양(平陽)은 [[순천시|순천]](順天)의 고호로, 후손들이 [[순천시|순천]]을 본관으로 하였다.<ref> [[신라]]시대 봉군 또는 봉작과 관련된 기관인 상사서(賞賜署) 및 사훈감(司勳監)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에도 이미 봉작(封爵) 내지 봉군(封君) 제도에 대한 어떤 제도화된 형태가 있었으리라 여겨진다.</ref>
 
《김씨 분관록》 및 《증보문헌비고》등에는 시조 '''김총'''(金摠)은 신라 종성(宗姓)으로 [[궁예]](弓裔)<ref> 이로 인해 김총이 궁예의 손자라는 설도 존재한다. 어찌 됬건 [[순천 김씨]]가 신라의 후예라는것은 맞다. </ref>이 때 인가별감(引駕別監)을 지내고 평양군(平陽君)에 봉해졌으며, 사후(死後) 향인(鄕人)들이 순천부(順天府) 성황신(城隍神)으로 추앙하였다고 한다.
 
[[조선 단종]] 때 [[계유정난]]으로 [[김종서 (1383년)|김종서]](金宗瑞)가 화를 입어 멸문지화를 당하여 선대의 문헌이 거의 소실되면서 고려 말 전라도 순천부(順天府) 여수(麗水) 출신으로 조선조에 여산군(麗山君)에 봉해졌다가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으로 개봉된 [[김승주]](金承霔)의 증조부인 '''김윤인'''(金允仁)을 1세조로 하는 계통과, [[김종서 (1383년)|김종서]](金宗瑞)의 조부인 '''김태영'''(金台泳)을 1세조로 하는 계통 두 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