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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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와 최후 ===
[[File:Song Jungill's dream Poetry.jpg|thumb|300px|송준길이 말년인 1672년 쓴 기몽 친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0호)]]
[[1663년]] 행 [[부호군]](行副護軍)이 되었고, 그해 [[9월]] [[송시열]]을 변호하는 장문의 상소를 올렸다. 1665년([[조선 현종|현종]] 6년) 원자의 보양(輔養)에 대한 건의를 하여 첫 번째 [[원자]]보양관이 되었다가 사퇴하였다. 이후 김집, 송시열, 윤선거 등과 강독하고 토론하며 학문에 정진했다. 송준길은 [[윤선거]]의 사람됨을 아깝게 여겨 그를 계속 관직에 추천했으나, [[윤선거]]는 이를 모두 거절했다. 또 [[윤선거]]와 [[송시열]]의 사이를 화해시키려 여러번 노력했으나 역시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