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석 (190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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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재학 시절 ====
[[1913년]] 이범석은 집을 떠나 [[서울특별시|경성]]으로 유학, 당시 중학교이던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추천으로 입학하였다. 이때 [[박헌영]], [[심훈]] 등을 만났고, 그들은 이범석의 동창생이 되었다. 경성고보 1학년, 2학년 재학 중 이범석은 명랑한 성격으로 교내 8선녀로 뽑히기도 했고, 경성 청년회관에 다니며 유도를 배웠다. 2학년 겨울 때에는 스케이트를 배우기도 했으며 경성고보 3학년 재학 중에는 글짓기에 흥미를 두었다. 3학년 재학 중 그는 학교에 한시(漢詩)를 지어 발표한 일이 있었는데, 글을 잘 지었던 그는 한문선생인 여자정 선생으로부터 칭찬을 듣기도 했다. 그는 늘 이범석에게 신동이라 칭찬하면서 앞날에 훌륭한 인물이 되라며 격려하였다.
 
경성고보 재학 당시 그는 일본인 학생들과 함께 등, 하교하였다. 일본인 재학생들은 그를 수시로 무시하였고, 3학년 1학기 초기에 사소한 말다툼이 감정이 되어 패싸움을 하였다. 교무실에 끌려간 그는 일본인 선생으로부터 성질이 야만스러워 남을 존경할줄 모른다는 모욕적인 꾸중을 듣게 되었다. 그 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ref name="mbc 라디오 프로그램 격동 50년">(http://www.imbc.com/broad/radio/fm/50years/story/story_62/1568238_21997.html mbc 라디오 프로그램 격동 50년)</ref> 수료하고, 이후 중국 항주체육학교를 졸업하였다.<ref name="mbc 라디오 프로그램 격동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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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아버지 [[이문하]]에 의해 결혼이 준비되었다. 그는 [[1915년]] 당시 [[천안군]] [[군수]]이던 [[김승현]](金升鉉)의 딸과 약혼하였고, [[1915년]] 가을 김씨와 결혼하여 서울에 집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부인과의 관계에는 관심이 없어 그가 [[중국]]으로 떠나면서 헤어졌다.
 
경성고보 2학년 재학 중이던<ref name="mbc 라디오 프로그램 격동 50년" />[[1915년]] 그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꿈꾸었으나 성적이 좋지 않아 가망이 없었다. 1915년 여름 이범석은 [[금릉대학]] 재학 중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한 [[여운형]]을 만났다. 어느날 그는 [[여운형]]을 찾아가 중국으로 망명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국내 학생들의 중국 망명을 주선하던 여운형은 그의 중국 망명 주선을 수락한다. 그는 [[강원도]] 이천의 집으로 내려가 아버지 이문하에게 중국 망명의사를 피력하였으나 아버지는 그가 장남이라는 이유로 망명을 만류하였고, 아버지는 중국 망명에 뜻을 둔 아들을 계속 설득하였다.
 
==== 망명과 상하이 도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