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배경: 문장을 다듬었습니다.
태그: m 모바일 웹
잔글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은 [[1969년]] [[6월 20일]] 밤 10시 15분 경 귀가 도중 [[신민당 (1967년)|신민당]] 원내총무 [[김영삼]]의 차량에 괴한 3명이 [[질산]]이 든 병을 던진 사건이다.
== 배경 ==
* 1969년 6월 13일 : 제70차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3선개헌]]에 대해 당시 원내총무였던 김영삼 의원은 개헌의[[3선개헌]]의 부당성을 알리고 개헌작업의 중단을 촉구하는 대정부질의를 하였다.
 
== 경과 ==
[[1969년]] [[6월 20일]] 밤 10시 15분경 [[서울특별시]] 청진동 음식점 장원에서 유진오 신민당 총재와 중진 간부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토요타 크라운|크라운]](서울자2-2347호/운전사 김영수)을 타고 귀가 도중이던 [[김영삼]] 의원의 차량이 자택에서 50m 떨어진 서울 상도동7의6앞골목상도동7의6 앞 골목 커브길에서 피습을 당했다. 차량이 피습 지점에 이르렀을 때 흑색 작업복을 입은 청년 3명이 길가운데서 옥신각신하다 차를 세우고 그 중 1명이 차뒤로차 뒤로 돌아와 김 의원이 타고 있는 차 뒷문을 열려고 시도하였다. 김의원은 문을 안에서 잠그고 1.5m 가량 차량을 몰고가자 청년은 주머니에서 초산<ref>硝酸. [[질산]]의 다른 이름.</ref> 병(길이/13&nbsp;cm 직경/5&nbsp;cm)을 주머니에서 꺼내 차량에 던졌다. 초산병은 차량 오른쪽 뒷문과 뒤창 사이의 철판에 부딪혀 깨졌고 차량 페인트가 일부 녹아 내렸다.
<ref>{{뉴스 인용
|제목=김영삼의원 차에 초산뿌려
13번째 줄:
}}</ref>
 
다행히 미수에 그쳤지만 김영삼 측은 '[[박정희]] 정권이 저지른 정권적 차원의 테러'라고 주장한다.<ref>{{뉴스 인용
|저자=김선주
|제목=<대선 D-30>정치테러 경계령…역대 대선테러 사례
20번째 줄:
|날짜=2007-11-18
|확인날짜=2009-12-01
}}</ref> 수류탄으로 생각했던 김영삼과 비서는 고개를 숙였으나 차량 일부와 아스팔트 바닥이 녹아내리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범행의 배후는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중앙정보부]]로 추정된다.
 
야당에서는 [[김영삼]] 원내총무를 테러한 사건을 수사하고 테러범을 잡을 것을 요구하였으나 사건은 유야무야 흐지부지되어버리고 말았다. [[1969년]]의 질산테러의 원인은 3선개헌 추진에 반대했으므로대한 이에반대로 질산투척을 받게 된 것이라고 한다추정된다.
 
하지만 테러를 시도한 범인은 결국 붙잡히지 않았다.<ref>{{뉴스 인용
|저자=황준범
|제목=YS 초산테러·DJ 납치 등 독재시절 야당 대상 빈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