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 타이거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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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KIA 타이거즈#역사}}
=== 창단과 [[1982년]] 시즌 ===
해태 타이거즈는 [[1982년]] [[1월 30일]] [[해태제과식품|해태제과]] 본사에서 1972년 황금사자기 우승 멤버인 김봉연, 김준환, 김우근을 비롯해 김용남, 김성한, 김종윤, 박전섭, 차정득 등 8명이 군산상고 출신. 광주일고를 나온 강만식, 차영화, 이상윤, 방수원, 광주상고 김종모, 최영조 그리고 1978년 이미 야구부를 해체한 전남고 출신의 신태중을 포함한 총 15명이라는 6개 구단 중에서도 가장 적은 초미니 선수단으로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와 [[MBC 청룡]]에 이어 3번째로 창단되었다. 선수들의 대부분은 [[군산상업고등학교]] 출신이었다. 개막 후 초대조창수와 유남호 두 코치가 감독의 폭력적인 행동 등 을 문제삼으며 팀을 이탈하는 사건이 터졌고 시시비비를 가리기도 전에 자존심이 상한 [[김동엽]] 감독이감독은 5승 8패라는 성적만 남기고 곧장 스스로 옷을 1개월벗고 만에팀을 해임되고떠나버려 [[조창수]]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았다. 전기 및 후기 리그 우승을 모두 놓치고 38승 42패, 4위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김성한 (1958년)|김성한]]은 투타를 겸업하며 전무후무한 10승 - 타점왕(69타점)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김봉연]]은 22홈런을 기록하여 원년 홈런왕에 올랐다.
 
=== 1983년 ~ 1985년 : 김응룡 감독의 첫 세 시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