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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는 맥족(貊族)이 고조선 즉, 예인(濊人)의 나라에 건국한 국가란 설<ref>리지린, 『고조선연구』1964, 사회과학원출판사</ref>과 예(濊)의 일부가 맥(貊)에 흡수되어 만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예맥족(濊貊族)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설<ref>이옥(李玉), 《고구려민족형성과 사회》(高句麗民族形成과 社會) 1984, 敎保文庫.</ref>이 있다.<ref>{{웹 인용 | url =http://db.history.go.kr/front2010/dirservice/JO/viewJuJO.jsp?pPageLevel=6&pLevel=5&pType=T&pDatabaseID=jo_004_001&pRecordID=jo_004_001c_02_002 | 제목 =중국정사조선전 주석보기 > 중국정사조선전 주석보기 > 三國志 卷 030 魏書 30 東夷傳 第 030 <nowiki> [註002] </nowiki> 夫餘 | 출판사 =국사편찬위원회 | 인용문 =③ 이와 같은 夫餘는 貊族이 古朝鮮 즉, 濊人의 나라에 건국한 국가란 說과(리지린, 앞의 책) 濊의 일부가 貊에 흡수되어 만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濊貊族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說이 있다. (李玉,『高句麗民族形成과 社會』) ≪參考文獻≫리지린, 『고조선연구』1964, 사회과학원출판사. 李 玉, 『高句麗 民族形成과 社會』1984, 敎保文庫. }}{{깨진 링크|url=http://db.history.go.kr/front2010/dirservice/JO/viewJuJO.jsp?pPageLevel=6&pLevel=5&pType=T&pDatabaseID=jo_004_001&pRecordID=jo_004_001c_02_002 }}</ref>
 
BC300~249년 연나라 진개 침공전 고조선 영토는 요하로 나타나고, 이후, 길림성 지역에 있던 부여는 연나라와 국경을 맞대게 된다. 진개 침공으로 고조선 수도는 요하에서 평양으로 이전한다. 고조선은 BC194년 위만에 망했는데, 그 이전 기록에 부여가 나타난다는 것은, 진개 침공 때부터 고조선 연대가 느슨해지면서, 그때부터 부여가 시작됐을 가능성 있다.
 
=== 영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