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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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초기 ===
==== 출생과 가계 ====
김인후는 신라 [[경순왕]] [[김부]](金傳)의 둘째 왕자 학성부원군(鶴城府院君) [[김덕지]](金德摯)의 후예이다. 그의 5대조인 조선 [[조선의 공신|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 흥려군(興麗君) 김온(金穩)이 서울에서 살았으나, [[조선 태종|태종]]의 왕권강화 일환으로 외척 세력을 제거할 때 처가인 [[여흥 민씨]] [[민무구]] 형제 옥사에 연루되어 [[1413년]] 피화를 입자, 배위 정부인 [[여흥 민씨]]가 아들 3형제를 데리고 [[전라도]] [[장성군|장성현]] [[황룡면|대맥동]]으로 낙담하여 자리를 잡게 되면서부터 자손들이 장성고을 사람이 되었다.
 
[[1510년]](중종 5) 7월 19일 [[전라도]] [[장성군|장성현]] [[황룡면|대맥동]]에서 아버지 의릉참봉 김령(金齡)과 어머니 [[옥천 조씨]] 사이에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타고난 성품이 맑고 순수하며 생김새가 단정하고 기개와 도량이 넓고 두터워 부친 참봉공의 사랑이 더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