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 모레스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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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멸 ==
[[1885년]] 광산이 고갈되고 나서 모레스네의 존속에 관한 의문이 제기됐다. 모레스네를 더 독립적으로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가 제기되었는데, 그 중에는 [[카지노]]와 독자적인 우편 서비스가 있었다. 독일계 의사, 우표수집가, 에스페란티스토였던 [[빌헬름 몰리]]({{lang|de|Wilhelm Molly}}, [[1838년]] - [[1919 년1919년]])는 모레스네를 세계 최초로 [[에스페란토]]를 공식 언어로 쓰는 곳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름을 아미케요({{lang|eo|Amikejo}}, ‘친구의 땅’)라고 제안했고, 역시 같은 제목의 에스페란토 행진곡을 국가로 제안했다. 하지만 어떤 제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벨기에와 프로이센은 70여 년 전처럼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900년 프로이센은 더 공격적인 자세를 보였고 모레스네의 행정을 방해하기도 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은 벨기에를 침범했고 [[1915년]]에 모레스네를 합병했다. 모레스네는 더이상 중립이 아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