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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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분관록》, 《증보문헌비고》등의 문헌(文獻)에 의하면 신라 [[김알지]]의 후예인 두 형제가 왕에게 직간(直諫)하다가 오히려 미움을 받아 먼 곳으로 유배되어 형은 북빈경(北濱京. 지금의 [[강릉]])에 살게 되었고, 동생은 시염성(鼓鹽城. 지금의 [[연백군|연안]])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시조 '''김섬한'''(金暹漢)은 [[연안군|연안]](延安)으로 유배된 아우의 후손으로 [[고려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감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지냈다. 그의 상계는 아득히 멀고 기록이 없어 상고할 수 없다. 일설에 가야 왕손이라는 족보에 의하면 연안 김씨는 가야계 후손이라 한다. 후손 김도(金濤)는 고려 공민왕(임인년. 1362)때 문과에 급제하고 밀직제학(密直提學)을 지냈다.
 
후손 김도(金濤)는 고려 공민왕(임인년. 1362)때 문과에 급제하고 밀직제학(密直提學)을 지냈다. 조선조에 들어 김도의 아들 [[김자지]](金自知)와 김여지(金汝知)는 판서를 지냈으며, [[김전]](金詮), [[김근사]](金謹思), [[김안로]]가 영의정을 지냈다. 김감(金勘)은 대제학을, 김경사(金敬思)는 광주목사를 지내는 등 조선 시대에 [[종묘배향공신]] 3명, 정승 6명, 대제학 1명, 왕비 1명, 문과 급제자 163명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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