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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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19-02-17}}</ref>
 
서독대사에서 물러난 후 천도교 교령이 된 최덕신은 대외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물답게 수운회관을 건립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와 유정회, 수협중앙회가 건물에 입주하는 등 외형적 성과는 볼 만했지만, 세력 과시에 치중하거나 천도교와 관련 없는 군시절의 부하를 데려오는 등 최고 지도자로서의 신앙적 책무를 외면한 독선과 전횡으로 교단으로부터 배척을 받았다고 한다.<ref>{{저널 인용
|url=http://www.dailian.co.kr/news/view/148228/?pcv=1
|제목=대통령은 왜 천도교를 적극 도왔을까
|출판사 = 데일리안
|날짜=2009-03-03}}</ref>
최덕신은 반북반공인사로 분류되었으나 미국 체류 중 6.25 때 납북된 부친의 묘소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방북한 그는 애국열사릉에 잘 모셔져 있는 부친 최동오의 묘를 보고 마음이 바뀐 것으로 전해진다. 최동오는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독립 운동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