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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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14.07.03}}</ref>
 
1968년 교인 100만명을 자랑했던 천도교 교세가 2009년엔 10만명이 안될 정도로 줄어들었다. 천도교의 약세화에는 전 교령 최덕신과 오익제의 월북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천도교는 1920년대 최대의 종교였다. 1926년 7월 10일자 동아일보는 조선 종교현황 중에 천도교인 수를 200만 명으로 보도하고 있다. 같은 기사에 기록된 기독교 35만 명, 불교 20여만 명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수다. <ref>{{저널 인용
1968년 교인 100만명을 자랑했던 교세가 2009년엔 10만명이 안될 정도로 줄어들었다. 천도교의 약세화에는 전 교령 최덕신과 오익제의 월북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ref>{{저널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3&aid=0000014750
|제목=[한국의 창종자들]남북 분단 후 교세 급격히 하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