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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18.11.17}}</ref>
서독 대사를 지내던 1967년, 중앙정보부가 독일에서 활동 중인 지식인들을 간첩으로 지명·납치한 '동백림 사건'을 계기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불편한 사이가 된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동백림 사건이 국제적인 항의와 외교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되자 최덕신에 책임을 돌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어는 물론 국제공용어인 에스페란토어에도 능통했던 최덕신은 미국 망명 전부터 메릴랜드 실버스프링에 사무실을 냈다. ‘배달민족회’란 간판을 내걸었다. 운영은 정기용이 맡았다. 최덕신의 미국 망명에는 공해방지시민협의회란 시민단체 후원 문제와 천도교 교령 재직시 공금횡령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박 정권과 노선 차이가 있던 공해방지시민협의회를 최덕신이 후원해준 게 박정희의 심기를 거슬렸다. 또 천도교 재단 공금 유용 문제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박정희가 도와주지 않자 쌓인 서운한 감정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박정희와 불화를 겪던 그는 미국, 서독, 일본 등을 전전하며 귀국하지 않다 1977년 11월 망명했다는 것이다.<ref>{{저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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