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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묘 명현의 신원 복원 ====
[[1543년]](중종 38) 34세 여름 6월 홍문관 부수찬 지제교 겸 경연검토관으로 승진하여승진하였으며, 7월 주강(晝講)에 나아가 시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그는 홀로 개연히 상소문을 올려 [[조선 중종|중종]]에게 수신·자성의 도를 진술하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았다.
 
『바른 선비들을 《소학》의 무리라 하여 배척하는 낡은 정치 풍토가 만연해 있는 조정의 기강과 풍속을 바로 잡을 것과, [[기묘년]]에 희생된 사람들이 한때 잘못한 일은 있더라도 그 본심은 터럭만큼도 나라를 속인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거운 죄를 입었습니다. 그 후에 죄를 지은 사람 중에 비록 죽어도 남은 죄(大逆不道)가 있는 자들이 세월이 오래되어 더러는 복직된 자도 있사온데 [[기묘년]] 사람들은 오히려 상의 은혜를 입지 못하였사오니, 신은 홀로 온편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기묘년]] 사람들이 숭상하던 ≪소학≫· ≪향약≫ 등은 버려지고 쓰지 아니합니다. ≪소학≫과 ≪향약≫은 성현의 글인데도 불구하고 지금의 선비들이 시속에 빠져 읽어서는 안 될 글이라 하며 버리니 매우 온편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지적 하는데 그 사연이 매우 간절하고 절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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