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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의 최종장은 1991년 12월 1일 열린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투표|우크라이나 독립 투표]]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0300209204001 |제목 = 우크라이나共 獨立 확정 各國 지지 잇달아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3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 이 투표에서 90%가 독립에 찬성했다.<ref>{{서적 인용|url = https://books.google.co.kr/books?id=F_QMCypjpXwC&pg=PA128&redir_esc=y#v=onepage&q&f=false |제목 = Ukrainian Nationalism in the 1990s: A Minority Faith |저자 = Andrew Wilson |출판사 = Cambridge University Press |쪽 = 128 |날짜 = 1997년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 |isbn = 0521574579}}</ref> 경제력과 정치력 면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2위의 세력을 가지던 우크라이나가 탈퇴함으로써 소련을 제한된 규모로라도 유지하고자 했던 고르바초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0200209205001 |제목 = 蘇연방 붕괴 신호탄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2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3개 공화국 지도자들은 연방을 대체할 대안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0400289103001 |제목 = '무너진 소련' 어디로 갈까 연방유지 '고르비 최후의 꿈'도 물거품 |출판사 = 한겨례신문 |날짜 = 1991년 12월 4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
 
12월 8일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3개 공화국의 정상이 벨라루스 서부의 [[비아워비에자 숲]]에서 비밀리에 만나 소련은 여러 이유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선언하고 이를 [[독립국가연합]](CIS)가 이어받았다고 합의한 [[벨라베자 조약]]에 서명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1000329101001 |제목 = 蘇연방 소멸 |출판사 = 경향신문 |날짜 = 1991년 12월 10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 또한 다른 공화국들도 CIS에 가입하라고 초청했다. 고르바초프는 이를 또 다른 쿠데타라고 하며 비난하였다비판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1000209201001 |제목 = 고르비"「독립聯邦」은 不法"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10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 하지만 조약 전문에 나와 있는, "소련은 [[국제법]] 및 지정학적 현실 등으로 인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해선 사실상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1000209204003 |제목 = 蘇 혼란확산 世界가 우려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10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
 
12월 12일엔 [[러시아 최고 소비에트|러시아 SFSR 최고 소비에트]]가 벨라베자 조약을 공식적으로 비준하였고 [[1922년 연방 조약]]을 폐기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1300209206006 |제목 = 러共의회「독립국연방」비준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13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 또한 러시아 대표단이 [[소련 최고 소비에트]]에서 각 공화국으로 소환되어 떠났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1300209206006 |제목 = 蘇연방 최고회의 해체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14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소련법에선 공화국이 대표단을 일방적으로 송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행동에 대한 적법성엔 논란이 있었다.<ref>법적으로는 러시아 SFSR의 [[s:ru:Конституция РСФСР 1978 года (в редакции 1 ноября 1991 года)#Глава 7. РСФСР - союзная республика в составе СССР|헌법 제69조]] 및 [[s:ru:Конституция СССР (1977)/редакция 26 декабря 1990 года#Глава 8. СССР — союзное государство|헌법 제72조]]에 따라 "소련에서 자유롭게 탈퇴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나 1990년 4월 3일 개정된 소련 연방법 [[s:ru:Закон о выходе союзной республики из СССР|1409-I]] 및 1990년 4월 26일 제정된 [http://iv.garant.ru/SESSION/PILOT/loadfavorite.html?pid=6335703&page=1&para_id=2147483649 1457-I]{{깨진 링크|url=http://iv.garant.ru/SESSION/PILOT/loadfavorite.html?pid=6335703&page=1&para_id=2147483649 }}에 따라 국민투표에서 등록된 유권자 전체의 3분의 2가 동의해야지만 탈퇴가 가능했다. 하지만 러시아 SFSR은 소련 탈퇴에 대한 특별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았다.</ref> 하지만 이에 대해 러시아 측, 크레믈린 측 어느 쪽도 반대하진 않았다. 만약 소련 연방정부가 반대했다 쳐도, 12월도 채 되지 않아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에 반대가 어떤 의미도 없었을 것이었다. 이에 형식상으로는 소련에서 가장 큰 공화국이 탈퇴한 것으로 보였으나 러시아 측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탈퇴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이 같은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1300289106011 |제목 = 독립국 공동체 성립 의미와 전망 연방재편 해체로 낙착 |출판사 = 한겨례신문 |날짜 = 1991년 12월 13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이날 늦게 고르바초프는 처음으로 사임하겠다는 암시를 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s://www.nytimes.com/1991/12/13/world/soviet-disarry-gorbachev-is-ready-to-resign-as-post-soviet-plan-advances.html |제목 = Gorbachev is Ready to Resign as Post-Soviet Plan Advances |저자 = Francis X. Clines |출판사 = 뉴욕 타임스 |날짜 = 1991년 12월 13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12월 17일, [[유럽 경제 공동체]]를 위시한 28개 유럽 국가와 4개 비유럽 국가, 발트 3국, 소련의 12개 공화국 중 9개 공화국 정상이 모여 [[헤이그]]에서 [[에너지 헌장 조약|유럽 에너지 헌장]]을 체결했다.<ref>{{웹 인용 |url=http://www.encharter.org/fileadmin/user_upload/document/EN.pdf#page=211 |제목 = Concluding document of The Hague Conference on the European Energy Charter 출판사 = Energy Charter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24073327/http://www.encharter.org/fileadmin/user_upload/document/EN.pdf#page=211 |보존날짜 = 2013년 10월 24일}}</ref>
 
벨라베자 조약이 소련을 합법적으로 해산시켰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12월 21일 소련의 12개 공화국 중 [[조지아 (국가)|조지아]]를 제외한 11개 공화국 정상이 모여 소련 해체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독립국가연합의 창설을 발표한 [[알마아타 조약]]에 서명하면서 소련의 해체는 확실해졌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200209201001 |제목 = 蘇「독립국가 연방」11개共 협정 체결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22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이 조약엔 고르바초프의 사임을 '승인'한다는 내용도 있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200289101001 |제목 = 소 연방 공식 소멸 |출판사 = 한겨례신문 |날짜 = 1991년 12월 22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고르바초프는 이때까지도이 때까지도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진 않았으나 이전에 독립국가연합이 실제로 수립되면 즉각 사임할 것이라 말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s://www.nytimes.com/1991/12/22/world/end-soviet-union-11-soviet-states-form-commonwealth-without-clearly-defining-its.html |제목 = 11 Soviet States Form Commonwealth Without Clearly Defining Its Powers |저자 = Francis X. Clines |출판사 = 뉴욕 타임스 |날짜 = 1991년 12월 22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12월 25일 저녁 7시, 고르바초프는 전국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대통령직으로써의 활동을 중지한다"라고 말하면서 대통령직 사임을 밝혔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600209204007&officeId=00020 |제목 = "가야 한다면 이제 갈 시간"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26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또한 고르바초프는 연방내각을 해체시키고 핵무기 권한을 포함한 권력 거의 대부분을 옐친에게 양도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600329104001&officeId=00032 |제목 = 옐친時代가 열렸다 |출판사 = 경향신문 |날짜 = 1991년 12월 26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그보다 7일 전인 12월 17일엔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만나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는 "기정사실"임을 합의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1800209201003 |제목 = 蘇연방 年末 공식해체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18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같은 날 러시아 SFSR 최고 소비에트는 러시아의 법적 국명을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에서 "러시아 연방"으로 바꾸어 주권국임을 보여주는 법령을 통과시켰다.
12월 25일 모스크바 시각 오후 7시 32분, 고르바초프가 크렘린을 떠난 후 마지막으로 [[소련의 국기]]가 내려갔으며 오후 11시 40분 그 자리에 [[러시아의 국기|러시아 삼색기]]가 계양되면서 상징적으로 소련의 상징이 사라졌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10100329110003 |제목 = 국제정세 러共 자리매김이 新질서 좌우 |출판사 = 경향신문 |날짜 = 1992년 1월 1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고르바초프는 사임 연설에서 국내 개혁 정책과 [[데탕트]]는 옹호했으나 "새체제가 작동하기도 전에 구체제가 무너져 버렸다"고 말했다.<ref>{{서적 인용|url = https://www.worldcat.org/oclc/907585907 |제목 = The world transformed : 1945 to the present |저자 = Michael H. Hunt |출판사 = Oxford University Press |날짜 = 2016년 |isbn = 9780199371020 |쪽 = 323–324 |oclc = 907585907}}</ref> 같은 날 [[미국의 대통령]] [[조지 H. W. 부시]]는 소련의 나머지 11개 공화국의 독립성을 정식으로 인정한다는 연설을 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700329105001 |제목 = 부시「독립국聯邦」승인 |출판사 = 경향신문 |날짜 = 1991년 12월 27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12월 26일, [[소련 최고 소비에트]] 상원 격인 [[민족회의연방회의]]는 소련 및 민족회의 자신에 대한 해체 투표를 열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700289106003 |제목 = 최고회의 해산 결의 "이제 우리가 떠나야 할 때" |출판사 = 한겨례신문 |날짜 = 1991년 12월 27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하원 격인 [[연방회의민족회의]]는 12월 12일 러시아 대표단이 철수하며 정족수를 못채워 사실상 기능을 중지하였다) 다음 날 27일부턴 옐친이 고르바초프가 사용했던 전 사무실을 이어받아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800209204002 |제목 = 옐친 집무개시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28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800209204008 |제목 = 옐친 크렘린宮집무실 앞당겨 차지 고르비 출근했다 씁쓸히 발길돌려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28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1991년 말까지 러시아가 인수인계하지 않은 소련 연방 기관은 운영을 중지했고 개별 공화국은 중앙정부로 승격되어 통치를 시작했다.
 
알마아타 조약에선 유엔 회원국 여부를 포함한 여러 문제도 다루었다. 특히 러시아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소련의 유엔 권한을 승계받을 권한이 있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900209204009 |제목 = 유엔 러共대사 安保理 첫참석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29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3일}}</ref> 소련 유엔 대사는 옐친 대통령 명의로 1991년 12월 24일 알마아타 조약에 의해 러시아가 소련의 승계국가임을 통보한 편지를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500099204013 |제목 = 蘇 UN의석 인수 러시아, 공식 통보 |출판사 = 매일경제 |날짜 = 1991년 12월 25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3일}}</ref> 다른 유엔 회원국에게 이의제기 없이 지나간 후, 1991년 12월 31일에 이 편지가 접수되고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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