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 볼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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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활동 = [[딥 퍼플]], [[빌리 코햄]], [[제임스 갱]], [[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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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볼린'''(Tommy Bolin, [[1951년]] [[8월 1일]] ~ [[1976년]] [[12월 4일]])은 [[미국]]의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로서 [[제퍼]](1969년부터 1971년까지), [[제임스 갱]](1973년부터 1974년까지), [[딥 퍼플]](1975년부터 1976년까지)과 함께 연주했으며, 솔로 가수 겸 세션 음악가로서 주목할 만한 경력을 유지했다. 그의 음반 목록의 대부분은 녹음 당시에 공개되지 않았거나, 인쇄되지 않았거나, 25세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후 몇 년이 지나서야 다시 공개되었다.
'''토마스 리차드 볼린'''({{llang|en|Thomas Richard Bolin}}, [[1951년]] [[8월 1일]]~[[1976년]] [[12월 4일]])는 스웨덴인의 부친과 시리아인 모친을 둔 혼혈아로, 12살 때부터 악기를 다루기 시작했다. 17살이 되었을 때는 기타 뿐만 아니라 드럼과 키보드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정도였다고 하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스쿨 밴드를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세미 프로 그룹인 [[제퍼]]라는 록 그룹의 기타리스트로서 프로 뮤지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1년에는 [[조 월쉬]](Joe Walsh)의 추천으로, 그룹 [[제임스 갱]](James Gang)에 들어가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이때부터 그의 존재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자신의 기타 실력도 높이 평가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제임스 갱의 멤버들 각자의 테크닉은 뛰어났지만 서로가 자신의 솜씨만을 과시하는 데 불만을 갖고 1974년에 탈퇴해 버렸다. 제임스 갱을 탈퇴한 토미 볼린은, 좀더 숙련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레코딩 세션맨으로 활동했다.
세션맨으로도 제법 인정을 받은 그는, 1975년에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 대신 [[딥 퍼플]]에 가담했다. 그리고 그는 딥 퍼플의 마지막 앨범 「Come Taste The Band」를 발표하였으나, 1976년에 딥 퍼플은 해산되었다. 다시 혼자가 된 토미 볼린은, 1976년 겨울에 자신의 밴드를 조직해 마이애미에서 공연을 갖기도 했는데, 그해 12월 4일, 공연을 마치고 마이애미 호텔에서 쉬다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25살의 젊은 나이로 절명하고 말았다.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한 채 세상을 떠나 버린 토미 볼린은, 감정에 의한 기타 연주를 자유자재로 하여 높이 평가되었지만, 그룹에 가담해서는 멤버들과 융화가 잘 안되는 단점을 지니고 있던 인물이기도 했다.
 
== 외부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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