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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사 대상 ==
문묘는 [[공자]]를 모신 사당이므로 문묘 종사의 기준은 당연히 [[공자]]의 도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얼마만큼 공헌했느냐가 될 것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있었던
이와 같이 역사가 선택한 '[[동방 18현|동방 18현인]]'은 권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가문이 좋다거나, 벼슬이 높다고 해서 선정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 중에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도 있지만, 벼슬과 출세를 마다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여 역사책에서 조차 흘려버리는 당대 석학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잘났느냐, 누가 더 유명하냐가 아니다. 모두 나름대로 독창적인 자신의 학문 세계를 구축하고, 학자와 선비로서 양심과 도덕을 실천했느냐이다. 따라서 학식과 덕망이 뛰어나고, 학자로서 후세에 존경을 받고, 학문적 업적이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크고 높아야 선정되었던 것이다.<ref>대한민국정책정보지(2017.02.24.) - [문화, 지금] 우리의 정신문화, '동국 18현',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01IqQpY08DGJM000]</ref>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중차대한 문묘 종사 인물을 정하는 일은 학통·당파·정치 정세 등에 따라 당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으며, 점향(點享)되거나 복향(復享) 되기도 하였으며, 위차(位次)가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반드시 [[중국]]의 예와 일치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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