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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신 정보
| 이름 = 아톤
| 역할 = 햇살태양과 햇빛
| 그림 = Aten.svg
| 그림크기 = 330px
| 그림설명 = 아톤은 햇살이 뻗어나오는 태양 그 자체로 그려진다.
| 신앙중심지 =아마르나
| 상징 =태양 원반과 뻗어나오는 햇살
| 신성문자 = <hiero>i-t:n-N5</hiero>
| 성별 =
| 배우자 =없음
| 부모 =없음(스스로 창조됨)
| 형제자매 =없음
| 자식 =없음
}}
'''아톤''' (Aton, Aten)은 본래 태양의 빛, 햇살을 의미하는 신이었으나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아크나톤]]이 창시한만든 유일신 종교의 유일신이태양신이다. 되었다.태양 모양의 원반의 형상을 띠고
 
있다. 본디 태양신 '라'의 한 측면이었을 뿐이었으나, 파라오 아멘호테프 4세( 후에 아크나톤으로 개명)에 의해
 
유일신 종교의 신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아크나톤이 지은 시 '아텐을 향한 찬송가'에 따르면, 아크나톤은
 
아텐을 창조주, 생명의 부여자, 세상을 돌보는 자로 찬미하고 있다. 아텐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창조신화는
 
존재하지 않고, 다만 '[[사자의 서]]'에만 그 이름이 등장한다. 아텐 신앙은 '[[호렘헤브]]'에 의해 근절되었다.
 
==개요==
 
=== 역사 ===
태양 원반의 모습을 띤 아텐의 모습은 12왕조 시대에 '시누헤의 서'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책에서는
 
죽은 왕이 하늘로 날아올라, 태양 원반과 결합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태양신으로서의 아텐은 아멘호테프
 
3세 때부터 주로 숭배받기 시작하였으며, '라'와 비슷한 매의 머리를 가진 남성의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아멘호테프 4세에 이르러, 아텐은 이집트의 국교로 지정되어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신으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아멘호테프 4세는 그와 아텐과의 연결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의 이름을 '아텐에게 사랑받는 자'
 
라는 의미인 '아크나톤'으로 개명하기까지 하였다.
 
=== 모습 ===
아텐의 완전한 이름은 '라 호라크티,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자, 태양 원반에 쓰여있는 빛의 이름을 가진 자'
 
이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 도시 아마르나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표시석에 쓰여져 있다. 이 긴 이름은
 
종종 '라 - 호루스 - 아텐' 또는 그저 '아텐'으로 불려졌다. 아텐의 신성은 더 오래된 신들의 힘이 모두
 
합성된 것으로 종종 이해되었으며, 그는 보통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피조물들은 아텐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아텐과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와 같은
 
유일신 신앙은 아텐을 특정한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내지 않고, 태양 원반의 모양으로만 표현하게 하였다.
 
=== 변화 ===
또한 아마르나 시대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신의 이름이 파라오의 이름과 같이 '카르투슈' 안에
 
쓰여지게 된 것이다. 라 - 호루스 (주로 라 - 호라크티로 불린다)는 라와 호루스의 합성된 신이다. 아마르나 시대에
 
이르러, 이와 같은 합성은 태양신의 힘의 근원으로 인식되었는데, 가장 주요한 발현이 결국 태양원반의 '아텐' 신이다.
<br />
 
== 어원 ==
이집트의 고왕국 시대에, '아텐'이라는 단어는 '원반'을 뜻하는 명사였다. 당시 태양은 '낮의 원반'이라고 불리며
 
태양신 라가 들어가 군림하는 곳으로 여겨졌다. 후에 중왕국 시대에 와서야, 특히 아케나톤의 통치 하에 이 아텐이라는
 
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아텐의 이름은 오직 파라오만이 쓰던 이름 표기법인 '카르투슈' 안에 들어가 있는데, 이는 아크나톤이 자기자신과
 
아텐 신을 동일시 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시도한 표현법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아텐 숭배를 곧바로 자신을 숭배하는
 
것으로 연결짓기 위해서로 시도되었으나, 당시 백성들은 그저 파라오를 아텐의 종으로 여기며, 세속적 권력인
 
파라오보다 더 상위의 존재로 아텐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br />
 
== 종교 ==
아텐의 대한 신앙의 기본원리는 아케나톤의 무덤 벽에 쓰여져 있다. 아텐 종교에 따르면, 밤은 어둡고 공포가 가득한
 
시간이며, 모든 것은 아텐이 직접 내려다 볼 수 있는 태양과 햇빛의 가호 아래 잘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아텐은 모든 피조물에 관심을 가지며, 나일 강을 스스로 창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아텐 신의 햇살은 오직 왕가의 생명만을
 
보호하고 지탱해 주었으며, 왕가를 제외한 나머지 생명들은 오직 아케나톤과 그의 부인 네페르티티의 신앙심에 의해
 
유지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아텐이 직접 말한 것으로 알려진 예시로는 단 하나가 있다, "''살아있는 아텐이 이르길, '내 햇살이 비추며....''."
 
 
선한 사람이 죽으면, 그는 빛의 도시 '아케타텐'에서 살아있을 때의 호사를 누리며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아텐이 의인화되어 표현되지 않았던 가장 주요한 이유는 그가 창조의 영역을 이미 넘어선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차가운 돌로 된 벽에 그의 모습을 함부로 새기기에는 그가 너무나 신성했기 때문이다. 왕은 주로 단독으로 아텐 신의
 
가호를 받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고, 아텐 신의 모습은 동물과 인간의 모습을 초월한 것으로 여겨졌다.
 
 
아케나톤은 그를 아텐 그자체와 동일시하지 않고, 스스로를 아텐의 아들이라고 칭하였는데, 이는 스스로를 호루스 신과
 
동일하다고 여긴 선대 파라오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조치였다. 이같은 행동은 아텐 신이 오직 하나만 존재하는 유일신
 
이라는 신앙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br />
 
== 숭배 ==
 
==기원==
원래는 석양을 신격화 한 신으로, [[테베]]에서 모셔지고 있었<ref>테베로 모셔지게 되기 전에는 [[헬리오폴리스 (이집트)|헬리오폴리스]]에서 모셔지고 있었다는 설에는 학문적인 근거가 없다.</ref>지만, 작은 지방신의 하나에 지나지 않고, 이렇다 할 만한 신상도 신화도 없고, 어떤 신인지, 뚜렷한 성질도 갖지 않았다. 그 때문에 당초부터 사람들의 해석으로서는 석양의 신인 것부터, 태양신 [[라]]와 동일시 되었지만, 별로 신앙은 분위기가 살지 않고, 후에는 신성이 희미해지고, [[천체]]로서의 태양을 나타내게 되어 갔다.
==아마르나 혁명==
===종교개혁의 개시===
[[아멘호테프 4세]]의 왕비 [[네페르티티]]는 아텐 신<ref>요즘 이집트에서 아텐이라고 하면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벌써 신이 아니고, 천체로서의 태양이며, 네페르티티의 신앙한 아텐신과는 다르다. 네페르티티는 [[미탄니]] 출신과의 설이 있는 것부터, 그녀의 아텐 신은 구래의 이집트의 아텐과 미탄니로 신앙되고 있던 태양신 [[미트라]]가 습합한 새로운 신이라는 설도 있다.</ref>을 신앙하고 있었다. 왕비의 영향도 있어 아멘호테프 4세도 아텐 신을 신앙하고 있었다. 한편, 당시 이집트에서 신앙을 모으고 있던 것은 아텐 신이 아니고, 구래의 태양신 [[아멘]]에서 만났다. 아멘호테프 4세의 치세에서 아멘 신앙은 전성기를 맞이하고 아멘을 칭송하고 있던 이집트의 [[신관]]들(아멘신단)은 [[파라오]]도 견디는 권세를 자랑했다. 아멘호테프 4세는 아멘신단을 억압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자신의 이름도 「[[아멘호테프 4세|아크엔아텐]]」으로 고쳐 아멘신의 문자를 깎았다. 왕가로서의 아멘 신앙을 정지해, 아텐 신앙을 가지고 이것으로 바꾼 것 등 매우많다. 다른 신들의 제사를 정지했기 때문에, [[다신교]]는 아니고 [[일신교]]의 양상을 나타내기에 이르렀다. 이것을 「아마르나 종교개혁」또는 「[[네페르티티#아마르나 혁명|아마르나 혁명]]」<ref>이것이 광의의 일신교인 것은 실수가 없지만, 현재는 인류 사상 최초의 [[유일신교]]에서 만난 가능성은 낮고, 유일신교는 아니고 [[단일신교]] 또는 [[일신숭배]]의 단계에 머무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ref>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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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나 미술===
사실을 있는 그대로에 드러내는 태양광선을 우러러보기 위해, 미술에서도 [[사실주의|사실적인 표현]]을 해 아마르나 시대의 미술 양식은 「[[고대 이집트의 미술#아마르나 양식|아마르나 양식]]」이라고 불려 다른 시대의 이집트 미술과는 구별을 분명히 한 것이 되고 있다.
 
<br />
 
== 아케타텐 ==
14개의 표지석들이 아케타텐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아케타텐은 현재 '아마르나'라는 지명을 갖고 있으며,
 
각각의 표지석들은 도시를 세웠다는 공표와 함께 왕실 가족들이 아텐 신의 가호를 받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아케나톤은 그의 도시가 지어지는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하여 자주 전차를 타고 순찰을 돌았는데, 아케나톤은 그의 통치 동안
 
고대 이집트의 수도로 아케타텐을 새롭게 선포하였다. 도시는 '왕의 길'이라는 도로가 중앙을 가로질러 곧바로 왕궁으로
 
연결되었으며, 도시가 한번에 계획도시로 지어졌기 때문에, 모든 도시의 배치는 아케나톤의 구상과 정확히 일치했으며,
 
모든 도시의 주요 건물들은 아텐 신에게 바쳐졌다.
 
==임종==
===종교개혁의 실패===
이 종교 개혁은 너무 급격했기 때문에, 아멘신단의아멘신관들의 저항이 격렬하고, 최종적으로 실패에 끝났다. 아멘호테프 4세 아크엔아텐이 실의 가운데 죽은 후, 그 아들인 [[투탕카멘]] 왕의 시대에 이집트는 아멘 신앙으로 돌아왔다. 아텐은 아마르나 혁명 이전의 「천체로서의 태양」에 되돌려져 아텐 신앙은 소멸했다.
===유일신기원설===
[[프로이트]]는 아크엔아텐의 치세년과 [[출애굽]]의 해로 추정되는 연대가 거의 같은 일을 근거로, 아텐신이 같은 [[유일신교]]인 [[유태교]]의 신 [[야웨]]의 원형으로 하는 설<ref>[[지그문트 프로이트]] 「모세와 일신교」{{ISBN|978-4480087935}}「유일신교 아마르나 기원설」등이라고 한다. [[요시무라 사쿠지]]도 학설로서가 아니지만, 저서 속에서 유사한 아이디어를 피로하고 있다.</ref>을 주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