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20번째 줄:
 
== 후학과 유산 ==
허영만 문하의 대표 작가로는 김종한 김준범 윤태호 강웅승 심갑진 김용회 작가가 있으며, 90년대에 데뷔하여 평단의 호평을 받는 다수의 주목받는 뛰어난 수작들을 발표하면서 각자의 분야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허영만 문화중 가장 오랫동안 문화생으로 있었던 김종한 작가는 허영만의 대표작인 오 한강, 질 수 없다 등등의 중기 대표작 작품 화풍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문하생이었다. 데뷔 이후 스승인 허영만 작품의 중기 작품 정서에 많은 영향을 받은 다수의 작품들과 대표작 화이팅 바람이를 선보이며 안정적인 연출과 보편적인 대중적 정서의 바탕을 둔 작품들을 발표했다. 김준범은 기계 전사 109의 성공으로 산호 작가의 라이파이 이후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90년대의 SF 작가를 대표한다. 허영만 문화중 가장 주목해야 부분 중에 하나는 강웅승과 심갑진 작가의 등장이다. 이들은 이전의 문하생들과 달리 오토모 가츠히로나 뫼비우스 미야자키 하야오 엔키 비랄 등 당시 기존의 한국 만화계에 화풍과는 전혀 다른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일본과 유럽 작가들의 화풍을 과감히 받아들이고 도입하면서 중.후기 허영만 화풍의 기술적인 방식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망치, 날아라 슈퍼보드. 아스팔트 사나이 등등 허영만 작품의 중기와 후기 대표작의 경계선에 가장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온 문하생들이었으며 이들의 혁신적인 시도는 당시 한국 만화계와 후기 허영만 작품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심갑진은 스승의 영향을 벗어나 오토모 가츠히로나 뫼비우스 등 유럽 만화에 영향을 강하게 받은 데뷔작 녹슨 총 이후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미학적인 스타일을 표방한 작품들을 선보였지만 대중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강웅승은 척박한 SF 만화 불모지에서 데뷔작인 데몬 시드 이후, 지구로의 귀향 같은 작품을 발표하며 성인 SF 만화 장르를 개척하기 위한 노력을 시도했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과 SF 만화 장르에 대한 낮은 인식, 청소년 보호법 문제 등 발생하면서 작품이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김용회 작가는 도깨비 언덕과 다수의 작품들을 발표하며 보편적인 대중적 정서의 꾸준히 작품들을 발표했고, 윤태호 작가는 가장 허영만 작가의 정서와 화풍을 계승한 작가로 야후, 이끼. 미생 등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정치적이고 사회적 이슈와 주제를 담은 사회파 성향의 작품들이 큰 성공을 거두며 허영만 문화중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작가가 되었다.
 
== 학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