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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는 [[667년]] [[연남생]]을 앞세워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최고 권력자였던 [[연남생]]의 합류로 [[고구려]]는 크게 무너져 [[당나라]]는 파죽지세로 [[평양성]]은 으로 진격했다. 결국 [[668년]] [[평양성]]이 함락되고 [[고구려]]는 멸망하였다.
 
=== [[고구려 부흥 운동과운동]]과 [[발해]] 건국 ===
[[고구려]]가 멸망한 후 옛 [[고구려]] 영토에는 [[당나라]]가 통제하는 [[안동도호부]]가 세워지고, 남아있던 [[고구려]] 세력 또한 [[671년]] [[안시성]] 함락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후 [[대조영]]의 일가는 [[고구려]] [[차오양 시|영주]](榮州)로 이주했다. 그 이주의 계기가 강제였는지, 아니면 내투였는지 단정키 어려운 바이나, [[걸사비우]]와 [[걸걸중상]]이 각각의 동질성이 강하였던 것으로 보아, 이 두 집단은 영주에 예속되어 있을 때부터 집단적으로 [[당나라]]에 예속된, 곧 일종의 [[기미주]]와 같은 양태하에 처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ref>劉振華, 〈渤海大氏王室族屬新證《社會科學戰線》1981-3</ref><ref>崔茂藏 편역, 《渤海의 起源과 文化》, 藝文出版社, 1988</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