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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홍종우의 김옥균의 암살 사건은 [[청일전쟁]]의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김옥균 암살 계획을 미리 감지한 쪽은 일본 정부였다. 그러나 암살을 애써 저지하지 않았다. 한때 김옥균을 근대화의 선구자 운운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한 [[일본]]이었지만, 김옥균이 [[청국]]의 간섭에 막히며 정변에 실패하고 조선 자객에게 쫓기는 몸으로 전락하자 찬밥 대하듯 했다. 그런데 김옥균이 [[상하이]]에서 [[홍종우]]한테 암살당하자 일본 정부와 언론은 일제히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마치 암살당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처럼 그를 애도하고, 의연금을 모으고, 시체 수습 문제를 협의하는''' 등 재빠르게 움직였다.<ref name="omai22"/>
 
한편 [[조선]]은 김옥균 암살이 국가의 경사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ref name="omai22"/> 홍종우가 돌아오자 고종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홍종우]]는 단번에 실력파 황실 관료로 부상한다. 그로서는 프랑스에서 외롭게 공부하며 조선을 근대국가로 발돋움시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실행에 옮길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ref name="omai22"/> 상하이에서 암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청에 불행이었다. 일본은 김옥균이 일본인이나 다름없고, 일본 여관에서 사건이 일어난 만큼 사건 관할은 일본에 있다고 주장했다. 암살을 방치한 청국 정부를 맹비난했다. 그러나 청은 홍종우의 신원을 확인한 다음 조선 정부의 요구대로 [[홍종우]]와 김옥균 시신을 조선에 넘겼다.<ref name="omai22"/>